그가 중학교 2학년 때, 친척에게 물려받은 클래식 기타로 연주연습을 하면서 음악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충암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는 같은 반 친구인 김학인과 함께 스쿨 밴드인 ‘페이퍼 모드(PAPER MODE)’를 결성하고 밴드로서의 활동을 모색했으나 곧 대학 입시와 금전적인 문제에 부딪혔다. 충암고등학교 졸업 후 밴드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멤버들은 신촌 근처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많은 노력을 하지만 병역 문제로 인해 페이퍼 모드는 얼마 못 가 데모 테이프만 남기고 해체되었다.
밴드를 떠난 다른 멤버들과 달리 음악을 계속 하기로 결정한 윤상은 페이퍼 모드의 데모 테이프를 주변 음악인들에게 들려 주었는데, 이에 흥미를 보인 가수 김현식의 도움으로 데모 테이프에 있던 곡 중 하나인 〈여름밤의 꿈〉이 1988년에 발매된 김현식의 4집에 수록된다. 또 그 데모에는 〈추억 속의 그대〉라는 곡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 곡은 1988년 황치훈의 데뷔 앨범에 수록되어 타이틀 곡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 때부터 윤상은 작곡가로서 본격적인 음악 경력을 시작했지만 페이퍼 모드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변진섭의 세션을 하며 기회를 모색하고 있었다. 당시 그는 임재범의 백밴드 ‘외인부대’에 있던 손무현과 절친한 사이였는데 밴드 결성을 위하여 손무현에게 기타리스트 자리를 제안했다. 하지만 손무현은 "보컬리스트도 없는 상태에서 계속 이렇게 지낼 수 없으니 연습량도 늘릴 겸 월급도 보장되는 김완선의 백밴드를 당분간 같이 해보는 게 어떻겠냐"며 역으로 설득했고 윤상은 이에 동의했다. 그 후 윤상은 1980년대 후반 인기를 끌던 가수 김완선의 백밴드 ‘실루엣’에서 기타리스트 손무현, 건반연주자 이승호(현재 유명 작사가로 활동), 컴퓨터 변준민과 함께 베이시스트로 1년가량 활동했다.
작곡가로서의 활동 당시 강수지의 〈보라빛 향기〉와 김민우의 〈입영열차 안에서〉등이 있다. 특히 윤상은 강수지가 직접 가사를 붙인 〈보라빛 향기〉, 〈혼자만의 겨울〉 등을 프로듀싱하며 강수지의 성공에 큰 몫을 해냈다.
1990년대
김완선의 백밴드 실루엣의 활동이 거의 끝나갈쯤 윤상은 당시 가수 김민우의 매니저였던 김광수(현 코어콘텐츠미디어 대표)로부터 솔로 가수 데뷔 제안을 받았다. 윤상은 이전에 김민우의 앨범 작업에 참여하여 데모 테이프를 만들어 준 적이 있었는데 여기에 가이드 보컬로 녹음한 윤상의 목소리를 김광수가 우연히 듣고 그에게 관심을 보인 것이었다. 그리하여 1990년 윤상은 신스팝과 마이너적인 진행을 같이 선보인 첫 정규 앨범 《1집》을 발매했고 90만 장에 가까운 판매고를 올리며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타이틀곡인 〈이별의 그늘〉이 큰 인기를 얻었는데, 이 곡은 2008년에 가수 이승기가 그의 비정규 앨범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Vol. 2》에서 〈추억 속의 그대〉와 함께 리메이크한 버전으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작곡가였던 윤상이 솔로 데뷔를 결심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사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당시 윤상이 구입을 원했던 신시사이저가 800만 원이었는데 때마침 소속사는 솔로 음반 한 장 계약에 무려 3천만 원을 제시했다. 윤상은 계약금으로 악기와 미디(MIDI:Music Instrument Digital Interface) 장비를 구입해 홈 스튜디오를 꾸몄다고 한다.
2집은 그가 학창 시절 몸 담았던 밴드 ‘페이퍼모드’를 재결성하여 제작되었는데, 멤버는 드러머 김학인, 보컬 노성원, 베이시스트 김범수(현재 활동명은 아스트로 비츠(bk!), 프로듀서)로 구성되었다. 2집은 더블 앨범으로 《PART 1》과 《PART 2》가 1년의 시차를 두고 따로 발매되었는데, 《PART 1》은 대중적인 곡으로 구성되어 100만장 이상의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타이틀 곡인 〈가려진 시간 사이로〉가 크게 히트했다. 《PART 2》는 전위적인 구성으로 비평가들에게 찬사를 받았지만 실험적인 성격이 너무 강한 나머지 30만 장 판매에 그쳤고, 이후 윤상은 상업적인 노선과 조금씩 거리를 두게 되었다. 또한 군 입대 이전, 정규 앨범 외에도 1993년 9월에 방영한 드라마 MBC 《파일럿》의 OST를 프로듀싱 했다.
1996년 1월 제대한 후 장기간의 공백을 깨고 비정규 음반 《Renacimiento》를 발표했다. 여기에서는 군 복무 이전에 선보인 자신의 곡들을 재편곡하고 미국, 이태리, 프랑스 출신의 객원 보컬을 섭외해서 그 나라의 언어로 개사하여 부른 버전을 수록했다. 같은 해에는 동갑내기 이자 동료 음악가인 ‘N.EX.T’의 리더 신해철과 함께 1992년부터 얘기가 오고 갔던 합동 음악작업이 이루어졌고, ‘노 댄스(No Dance)’라는 이름으로 프로젝트 팀을 결성하여 1996년 가을에 앨범 《골든힛트》를 발매했다. 두 사람은 테크노 음악으로 만든 여러 형태의 곡을 선보였는데, 테크노 음악이 1990년대 당시 국내 가요시장에서 댄스음악의 대량복제에 쓰여온 왜곡된 현실을 바로잡고, 테크노 음악으로도 얼마든지 실험적인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 작업을 했다고 밝혔다. 이 앨범의 실린 곡 중 신해철이 만든 〈월광〉은 1998년 발매된 《Crom`s Techno Works》앨범에서 편곡되었고, 〈달리기〉는 S.E.S.의 2002년 발매작 《Choose My Life-U》에서, 〈질주〉는 아스트로 비츠가 2008년에 발매된 윤상의 헌정앨범 성격인 《YOONSANG SONGBOOK:Play With Him!》에서 각각 리메이크했다.
1997년 발매한 Insensible에서는 《Renacimiento》에서 보인 월드 음악적인 성향과 신스팝 형태의 곡을 선보였다.
2000년대
2000년에는 2장의 CD로 구성된 정규 3집 《CLICHÈ》를 발매한다. 신곡인 1번째 디스크에서는 1, 2집보다 발전된 전자 음악을 선보였으며, 2번째 디스크에서는 《Renacimiento》, 노 댄스의 《골든힛트》에서 신해철의 작품을 제외한 자신의 작품, 싱글 Insensible까지 세 장에서 베스트를 추려 리마스터링하여 수록했다. 이 음반은 이후 ”영미 팝음악에 질질 끌려 다니는 우리 음악에 대한 신물 혹은 반발”[6]이라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02년에는 전자음악이 아닌 어쿠스틱한 성향의 월드뮤직 장르가 주를 이루는 4집 《이사》를 발매했다. 여기에서는 그가 적지 않은 관심을 내비쳤던 라틴 음악을 좀 더 깊이 있게 다루었다. 이 시기 그는 대중가요계에서 '라틴 음악의 전도사'[7]라는 애칭을 얻게 된다. 그리고 진행해오던 라디오 프로그램인 《음악살롱》을 2002년 봄개편으로 인해 하차하게 되면서 마지막 방송날 마지막 곡으로 이 앨범의 타이틀 곡 〈이사〉를 틀기도 했다. 또한 이 때부터 향후 몇년간 SM 엔터테인먼트에서 작곡가 활동, 2장의 앨범 발매를 하기로 하고, 보아, 동방신기와 작업한 적도 있다.
2003년 4월에는 다섯 번째 정규 앨범 《There Is A Man...》을 발매하고 댄스 일렉트로니카와 라틴계 음악, 랩 음악 까지도 선보였다. 이 앨범의 수록곡들 가운데 〈길은 계속된다〉는 그가 몰두하고 있는 글리치(glitch)의 색채를 띠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2008년 12월에는 후배들과 함께 과거 히트곡들을 다시 작업한 헌정앨범 격인 스페셜 앨범 《YOONSANG SONGBOOK:Play With Him!》을 발매했다. 2009년 1월 10일에는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윤상 콘서트-Play with him〉이라는 타이틀로 후배 음악가들과 함께하는 공연을 개최했다[8].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Kayip, 베를린에서 활동하고 있는 Superdrive와 함께 프로젝트 그룹 ‘모텟’을 결성, 공연을 통해 IDM/electronic 계열의 입지를 다졌다. 이 때 윤상은 보스턴의 명문 Berklee College of Music Music Synthesis학과를 졸업하고 뉴욕 NYU(New York University)대학원 Music Technology학과에서 석사과정을 수학하였다.
2009년 1월에는 강수지의 Thanks Always 싱글에서 윤상의 Tango por uno라는 연주곡에 가사를 붙인 〈잊으라니〉라는 곡이 수록되어 타이틀곡이 되면서 오랜만에 두 사람이 다시 작업을 하게 된다. 1996년 발매된 강수지 7집《One and Only》에서 윤상이 작곡한 타이틀곡 〈하데스-오르페우스의 눈물〉이 상업적으로 실패함에 따라 두 사람의 협력 관계가 중단된 이후 7년여 만이었다.[9]7월 1일에는 일렉트로니카 장르의 곡 들이 수록된 6집 앨범 《그땐 몰랐던 일들》을 발매하였다. 또한 같은 달 29일에는 2008년 12월 초부터 2009년 3월 말까지 방영되었던 국수 요리의 유래와 발전 등을 다룬 KBS 다큐멘터리《인사이트 아시아 - 누들로드》의 사운드트랙 《Noodle Road》가 발매되었다. 8월 30일에는 올림픽공원에서 〈AUDIOLOGIE(오디올로지) 콘서트〉 세 번째 시리즈의 일환으로 윤상과 후배들이 함께하는 공연을 열고 그는 6집 신곡을 선보였다. 공연 다음 날 그는 한 학기 남은 유학생활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했다[10].
2010년대
2010년 3월에는 뉴욕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유학 생활을 정리한 뒤 귀국하여 상명대학교 뮤직테크놀로지학과 초빙교수로 임용되었고[11][12], 제7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음악인 부문’을 비롯해 6번째 정규 앨범인 《그땐 몰랐던 일들》, 프로젝트 팀 모텟의 앨범이 모두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음반’부문에, 누들로드 사운드트랙은 ‘최우수 영화TV음악’부문에, 6집 수록곡 〈떠나자〉는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노래’ 후보로 오르게 되면서, 이소라 등과 함께 이 해 한국음악대상 최다후보자가 되었으나[13][14], 수상은 하지 못했다. 4월에는 KBS 제2FM의 봄 개편으로 《팝스 팝스》의 DJ를 맡아 오랜만에 다시 라디오 방송을 재개하였다.[15] 9월에는 음악감독을 맡아 게임 아키에이지의 음악 작업을 시작한다.[16][17] 12월에는 MBC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의 미국편에서 조PD와 함께 특별심사위원을 맡아 심사를 하였다.[18] 12월에는 EBS다큐프라임에서 4부작으로 기획, 10일부터 13일까지 방송된 〈한국의 강〉 나레이션을 맡았다.
2011년 4월에는 데뷔 20주년을 기념해 그 동안 발매했던 앨범과 싱글을 모두 리마스터하여 박스세트로 구성한 《윤상 20th anniversary》세트를 발매했다. 9월부터 방송된 《위대한 탄생 시즌 2》에서 윤상은 여러 음악인들과 함께 정식 멘토가 되어 심사를 하며 때로는 참가자에게 문제점이 발견되면 엄격한 심사평을 하기도 했다[19][20]. 6월에는 Mnet의 프로그램 《세레나데 대작전》에서 노홍철과 공동진행을 맡아 2012년 3월까지 진행했다[21]. 10월 14일에 방송된 다큐멘터리 《MBC 스페셜-태어나면 시작하라, 캥거루 케어 2》에서는 그가 데뷔 이후 처음으로 다큐멘터리 나레이션을 맡았다.[22]
2012년 6월 2일과 3일 이틀간 《REboot》라는 타이틀로 데뷔 후 첫 단독공연을 개최하게 되었는데[23], 윤상은 그간 자신을 "가창력이 뛰어나거나 무대에서 즐기는 스타일이 아니고, 스튜디오에서의 과정에 중점을 두고 음악을 한다는 소신이 있었다."라고 정의하고, 이 공연에 대해서는 "지난 20년 음악 인생에 대한 정리가 필요했다."라고 밝혔다.[24]
2013년 5월 KBS라디오 봄 개편 때 음악에 매진하기 위해 진행해 오던 프로그램 《팝스 팝스》의 진행을 최다니엘에게 넘겼다. 상명대학교 교수직도 그만두며 새 앨범 작업과 공연 준비에 들어가게 되었고[25], 7월 12일~14일, 19일, 20일 닷새간 소극장 콘서트 《여름밤의 꿈》을 진행하게 된다[26]. 이 콘서트 중 하루를 아키에이지 게이머들과 함께하기 위해 게이머 300여 명을 초청해 아키에이지 배경 음악과 새로운 테마를 감상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27]. 11월부터는 KBS의 다큐프로 생명최전선에서 나레이션을 맡았다. 12월 25일에는 ‘Letter to your Christmas’라는 타이틀로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개최하였다.
2002년 7살 연하인 배우 심혜진과 결혼하여 2010년 기준으로 슬하에 2남을 두고 있다. 부인 심혜진은 케이블TV 현대방송 공채 탤런트 1기 출신으로 SBS 드라마 《모델》, 《파트너》에서 조연으로 출연했으며 《생방송 인기가요 50》 외 등등의 프로그램 진행을 맡았다. 1998년 윤상의 뮤직비디오 ‘언제나 그랬듯이’에 출연하면서 윤상과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1966년생 영화배우 심혜진과는 동명이인이며 1975년생이다.
사건 및 논란
표절 논란
1989년, 변진섭 2집에 수록된 윤상 작곡의 〈로라〉가 인기를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세간에서는 츠츠미 쿄헤이(일본어: 筒美京平)가 1985년에 제작한 사이토 유키(일본어: 斉藤由貴)의 히트곡, 〈정열(情熱)〉을 표절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공연윤리위원회는 윤상의 〈로라〉에 대한 공연금지와 판매금지 조치를 1993년 5월 19일부로 단행하였으나, 금지처분은 곧 해지되었고, 현재 온라인 음원사이트를 통해 구입이 가능한 상태이다.[28]
병역 비리 논란
1993년5월에 윤상에게 대한민국 병무청으로부터 현역 입대 영장이 발부되었다. 2집 발매 후 군 입대를 앞둔 상태였지만 별다른 언급 없이 공식 석상에서 돌연 잠적했고, MBC FM의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밤의 디스크쇼》 DJ도 갑자기 하차했다. 이 무렵 그가 병역 기피를 위해 아르헨티나 국적을 취득했다는 루머가 연예계에 돌았으며 곧 사실로 밝혀졌다. 이에 검찰이 병역 비리 혐의로 수배령을 내렸으나 마음을 바꾼 윤상이 현역으로 자진 입대한 사실이 밝혀져 수사는 곧 내사 종결되었다.[29]1993년 말 의정부시에 있는 대한민국 육군306보충대에 현역으로 입대하여 1995년 말에 병역을 마쳤다. 입대 당시, 그의 아르헨티나 국적은 취소되어 대한민국 국적을 다시 부여받았다.
↑윤상의 곡을 동료, 후배 아티스트들이 재해석한 일종의 헌정앨범 성향을 띄는 음반이다. 앨범 컨셉 아이디어를 유희열이 제공했는데, 유희열이 윤상에게 앨범 프로듀서까지 맡아서 하겠다고 해서 유희열이 앨범 프로듀서를 할 예정이었다. 윤상은 유희열이 앨범 기획에 관한 내용을 정리를 해서 자신한테 연락을 줄 거라고 기다렸는데.. 1년이 넘도록 유희열이 별다른 얘길 안 해서 결국 박창학이 앨범의 기획, 정리를 다 했다고 한다. 윤상이 말하길 "희열씨가 아이디어만 주고 뒷 수습을 안 해줘서 결국 박창학씨가 다 마무리 했다고.." 이 얘긴 윤상이 Song Book 앨범 발매했을 때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언급. "막연한 아이디어를 현실이란 무게로 정리해준 특별한 친구 박창학 씨에게 무한 감사 드립니다."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 2008년 12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