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방송(文化放送, 영어: Munhwa Broadcasting Corporation, MBC)은 대한민국을 가시청권으로 한 지상파공영 방송사이다. 라디오 방송국은 1959년에 부산에서 시작하여 1961년에 서울에서 개국했다. TV 방송국은 1969년에 개국했으며 11번 채널에서 방송한다.
연혁
설립과 라디오 시대 (1959년 ~ 1969년)
1959년 4월 15일 개인사업가 김상용과 방송기술자 정환옥이 한국 최초의 상업 라디오 방송인 부산문화방송을 개국함으로써 문화방송 계열회사 중 최초로 방송국을 설립했다. 현재의 부산문화방송은 개국 당시부터 1965년까지 문화방송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김지태는 1961년 1월에 서울에서 서울민간방송이라는 상호로 회사를 설립한 후 3월은 한국방송HBC[주해 1]으로 사명을 변경한다. 1기 성우, 기자, 아나운서 모집은 모두 한국방송 시기인 6월 7일에 이루어졌다. 7월은 라디오서울로 이름을 바꾼 후 10월에 한국문화방송으로 다시 바꾼다. 11월에 라디오방송 시험전파를 발사하고, 12월에 MBC 라디오 방송국[주해 2]을 개국한다. 하지만 김지태는 5·16 군사 정변 이후 부정축재자로 적발, 1962년 한국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 부산일보 등 전 재산을 5·16장학회에 헌납했다.[1][2][3]
1966년은 라디오의 질적 심화와 발전이라는 목표로 ‘뉴라디오이론’을 도입한다. 이로써 한국 방송 사상 처음으로 생활정보방송을 실시하였고, 자율심의기관인 방송편성심의위원회·농어촌방송자문위원회 등을 설치하였다. 사세가 확장되며 1968년 2월에 정동 사옥을 기공, 같은해 12월 31일에 TV 시험전파 방송을 성공한다.[5]
흑백 텔레비전 시대 (1969년 ~ 1980년)
1969년 8월 8일: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 실시.
한국문화방송은 1969년 새로이 준공된 정동 사옥에서 MBC TV(호출부호 HLAC-TV, 출력 2 kW)를 개국한다.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을 실시를 하였다.[주해 3] 후발주자였지만 1969년은 일본 후지 TV, 1971년에는 타이완 TTV,[6], 홍콩 RTV(이후 ATV)[7], 미국 CBS를 비롯해 20여개 지역 민방사와 네트워크협정도 맺는다.
이후 여러 대형쇼를 기획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켜서 드라마 《새엄마》, 《신부일기》, 《수선화》, 《후회합니다》 등을 히트시키며 시청률면에서 KBS를 앞서고 마침내는 1974년은 시청률 우위를 점하고 있던 TBC를 앞서기도 했다. 이후 TBC와 시청률이 막상막하였으며 서로 번갈아가며 드라마를 히트시켰다.[주해 4] 1974년 11월 1일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경향신문과 통합되어 주식회사 문화방송·경향신문으로 사명을 변경하였으나 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신아일보를 흡수하였지만 경향신문과는 분리되면서 현재 경향신문-문화방송은 정수장학회에 관여되어 있다는 것 외에는 무관하다.[주해 5] 1969년 은행 차입과 외자에 의존해 TV 방송을 시작하면서 경영난에 봉착한 문화방송의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박정희 정권은 주식의 70%를 쌍용화재와 현대 등 대기업 11개 회사에게 강제 인수시켰다. 대기업 지분은 배당도 받지 못하고 의결권도 없고 매각도 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1977년에는 MBC 대학가요제를, 1979년은 MBC 강변가요제를 시작하고 같은 해 여의도 스튜디오가 공사에 들어간다. 그리고 1980년 12월 22일, 컬러 방송이 시작되었다.
컬러 방송 시대 (1980년 ~ 1990년)
1980년 7월 8일 첫 컬러 시험 방송을 시작하여 이듬해에는 TV 컬러방송을 전국으로 확대하였다. 그러나 1980년 전두환신군부 세력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대기업들은 문화방송 주식을 내놓았고, 11월 언론통폐합 과정에서 한국방송공사(이하 KBS)가 맡게 됐다. 7개 지역 가맹국의 주식 또한 각각 51% 이상 인수되어 문화방송은 전 가맹국과 직할국을 계열화하게 되었다. 또한 1981년 4월 1일, '신방겸영' 금지를 명문화한 언론기본법 제정에 따라 문화방송과 경향신문사가 분리되어 MBC의 독립적인 방송 체제가 확립되었다.
같은 시기에 MBC의 물리적 기반도 확장되었다. 1982년 3월 17일에는 서울 여의도에 스튜디오 사옥을 준공하여 방송 제작 능력을 크게 향상시켰다. 이와 동시에 다른 방송사와 비교할때 시청률에 우위를 보였으며 뉴스, 드라마, 예능 등 거의 전 부문에서 KBS를 앞섰다.(지상파 민영 상업 방송사인 SBS 개국 이후인 90년대 중반까지). 1986년 1월 1일에는 홍익대학교 권명광 교수가 작업한 새로운 CI(Corporate Identity)를 도입하여 브랜드 이미지를 현대화했다.
전두환이 퇴임하고 노태우가 정권을 잡은 뒤 방송의 공정성과 독립성 강화를 위한 제도적 변화도 있었다. 1988년 12월 26일, '방송문화진흥법'을 제정하고 문화방송의 주식의 70%를 공인법인인 방송문화진흥회가 관리하도록 하였다. MBC의 주식을 정부나 외부의 간섭 없이 독자적으로 운용하고 감독함으로써 방송의 공정성과 독자성을 보장하고, 나아가 방송문화의 발전 및 공공복지 향상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문화방송은 모든 방송 제작을 포함한 모든 비용을 시청료가 아닌 광고 수익으로 충당하고 있어 상업적 성격이 있으나, 방송문화진흥회를 중심으로 문화방송의 사장을 선임하고 경영을 감시하므로 공영방송이라고 할 수 있다. 유사한 체제로는 영국의 채널 4가 있다. 방송문화진흥회 주식 이외의 주식지분 30%는 정수장학회가 보유하고 있다.
멀티미디어 시대 (1991년 ~ 2000년)
1991년 1월 17일, 걸프 전쟁으로 인한 유가 상승과 국내 에너지 절약 정책에 따라 방송 시간을 단축하는 등 시대적 상황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로부터 3년 뒤에는 MBC 프로덕션, MBC 미디어텍, MBC 방송문화원을 창립했고, 이듬해 MBC 미술센터를 세웠다. 동시기 일산 사옥의 부지를 매입하고 신사옥 건설을 추진하는 모습도 보였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MBC는 인터넷 시대에 발맞춰 큰 변화를 겪었다. 2000년 3월 11일에는 《인터넷 MBC》(iMBC)를 창립하고, 같은 해 7월 7일에는 공식 사이트(imbc.com)를 개설하여 온라인 플랫폼으로의 확장을 시작했다.
조직 구조 면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2000년 4월 10일에는 《MBC 프로덕션》과 《MBC 예술단》을 합병하여 제작 역량을 강화했다. 또한 2000년 9월 1일에는 경영센터를 입주하여 경영 효율성을 높이는 등 내부 구조 개선에도 힘썼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들은 MBC가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적응하고, 디지털 시대의 방송사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특히 인터넷 기반 서비스의 확대는 MBC가 전통적인 방송 매체를 넘어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으로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디지털 시대 (2001년 ~ 2010년)
MBC는 2000년대에 들어서며 디지털 시대에 부응하는 다양한 기술적 혁신과 조직적 변화를 겪었다. 2001년 12월 DTV 방송을 개시하며 디지털 방송 시대의 서막을 열었고, 2005년 12월에는 지상파DMB 서비스를 시작하여 모바일 방송 영역으로 확장했다. 2006년 6월에는 데이터방송을 시작하며 방송의 양방향성을 강화했다.
조직 정체성과 인프라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한 변화가 있었다. 2005년 1월 3일에는 새로운 CI를 도입하여 브랜드 이미지를 쇄신했다. 같은 해 1월 21일에는 자회사인 iMBC가 코스닥에 상장되어 자본 시장에 진출하는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 시설 면에서는 2007년 11월 30일 MBC일산드림센터를 완공하여 제작 역량을 강화했고, 2006년 6월에는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 내 신사옥 부지를 확정했으며, 2010년 6월 18일에는 해당 부지 착공을 시작했다. 또한 2010년 9월 1일에는 MBC 경기인천지사(현 MBC경인지사)를 개소하여 지역 방송 네트워크를 확대했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들은 MBC가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적응하고, 디지털 시대의 종합 미디어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보여준다. 특히 디지털 방송과 모바일 서비스의 도입, 새로운 제작 시설의 확충 등은 MBC가 전통적인 방송의 틀을 넘어 다양한 플랫폼으로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다채널 시대 (2011년 ~ 현재)
MBC는 2010년대에 들어서며 조직 구조와 방송 기술의 현대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2011년 9월 1일, 경남지역 문화방송 계열사들을 통합해 MBC경남을 출범시켰고, 이후 2015년과 2016년에도 각각 MBC강원영동과 MBC충북을 출범시키며 지역 방송 네트워크를 재편했다.
기술적 측면에서는 2012년 12월 31일 수도권에서 지상파 아날로그 텔레비전 방송을 종료하고, 2013년 1월 1일부터 24시간 종일방송을 실시하는 등 디지털 방송 시대로의 전환을 완료했다. 2017년 5월 31일에는 UHD 방송을 개국하여 방송 화질의 혁신을 이뤘다.
인프라 측면에서는 2014년 9월 1일, 여의도 사옥 시대를 마감하고 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암동의 신사옥으로 이전하며 새로운 도약의 기반을 마련했다. 또한 2016년 12월 19일에는 FM4U 송신소를 남산에서 관악산으로 이전 완료하여 수도권 난청 지역 문제를 해결했다.
MBC는 2017년 9월 4일부터 11월 13일까지 71일간의 총파업을 겪으며 내부적 변화를 겪었고, 이후 새로운 경영진을 맞이했다. 2023년 5월 8일에는 AM 라디오 방송을 폐국하는 등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방송법에 따르면, 누구든지 "특수관계자"[주해 7] 가 소유하는 주식 또는 지분을 포함하여 지상파방송사업자(문화방송이 해당됨)의 주식 또는 지분 총수의 100분의 30을 초과하여 소유할 수 없으나, 예외적으로 문화방송의 경우처럼, 「방송문화진흥회법」에 의하여 설립된 방송문화진흥회가 방송사업자의 주식 또는 지분을 소유하는 경우를 포함하여 몇 가지 예외를 규정하고 있다.
영업 매출
MBC의 광고 매출은 6,940억 원(2010)으로 전년 대비 15% 증가하였으며, 1988년부터 현재까지 광고 매출액 기준으로 방송사 중 1위이다.[10]
↑"특수관계자"에 대해서는 방송법 시행령에서 규정하고 있다. 제3조 (특수관계자의 범위) ①법 제8조제2항 내지 제4항 및 동조제10항에서 "특수관계자"라 함은 본인과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관계에 있는 자를 말한다. <개정 2004.9.17, 2006.3.10> 1. 본인이 개인인 경우에는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 가. 배우자(사실상의 혼인관계에 있는 자를 포함한다), 8촌 이내의 혈족 또는 4촌 이내의 인척 나. 본인이 단독으로 또는 가목의 자와 합하여 100분의 30 이상을 출자 또는 출연하거나 주요 경영사항에 대하여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법인(법인격이 없는 사단 또는 재단을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 및 그 임원 다. 본인이 단독으로 또는 그와 가목 또는 나목의 관계에 있는 자와 합하여 100분의 30 이상을 출자 또는 출연하거나 주요 경영사항에 대하여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법인 및 그 임원 2. 본인이 법인인 경우에는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 가. 임원 나. 계열회사(「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2조제3호의 규정에 의한 계열회사를 말한다) 및 그 임원 다. 단독으로 또는 제1호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관계에 있는 자와 합하여 본인에게 100분의 30 이상을 출자 또는 출연하거나 본인의 주요 경영사항에 대하여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개인 및 그와 제1호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관계에 있는 개인, 법인 및 그 임원 라. 본인이 단독으로 또는 그와 가목 내지 다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관계에 있는 자와 합하여 100분의 30 이상을 출자 또는 출연하거나 주요 경영사항에 대하여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법인 및 그 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