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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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서울特別市, 영어: Seoul Metropolitan City)는 대한민국의 수도이자 문화·인문·정치·경제 중심지 역할을 하는 도시로, 경기도와 인천광역시까지 아우르는 수도권의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특별시로 지정된 도시로서, 제1의 도시다. 2024년 기준으로 인구 수는 약 930만 명이다.[2]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하였으나 본 역사는 백제 첫 수도인 위례성을 시초로 한다. 삼국시대에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고구려, 백제, 신라가 번갈아 차지하였으며, 고려 시대에는 왕실의 별궁이 세워진 남경(南京)으로 개칭하였다. 1394년 태조가 남경으로 천도한 뒤 그 이름을 한성부(漢城府)로 개칭하면서 조선의 수도로 삼았다. 태조는 유교의 도성제에 따라 한성에 경복궁과 종묘, 사직, 육조거리와 시전을 세우고 이를 둘러싼 한양도성을 갖추어 수도로서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세도정치 때는 명문가들이 종로에 거주하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의 전란을 거치며 일부가 훼손되었으나 500년 넘게 조선의 수도이자 중심으로 기능하였다. 1896년 대한제국 선포 이래 전차, 교각 등의 근대 기반시설이 건설되면서 변모하기 시작한 한성부는 1910년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경성부(京城府)로 개칭되고, 일제강점기 조선의 수도로서 용산, 영등포 등지로의 영역 확장을 겪었다. 1945년 광복 이후 서울로 개칭되고 특별자유시가 되었으며 이후 1949년, 대한민국의 수도이자 특별시 지위에 올랐고, 한강의 기적으로 대표되는 대대적인 경제성장과 강남 개발로 행정구역 확장 등의 도시 정비를 거쳤으며,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 2002년 FIFA 월드컵, 2010 G20 정상 회의 등의 국제행사도 다수 개최하였다. 중앙으로 한강이 흐르고, 북한산, 관악산, 도봉산, 불암산, 인릉산, 청계산, 아차산 등의 산들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의 도시이다. 면적은 605.23 km2로 대한민국 면적의 0.6%이고, 인구는 약 950만 명으로 대한민국 인구의 17%를 차지한다. 시청 소재지는 중구이며, 25개의 자치구가 있다.인구가 가장 많은 구는 송파구이며 가장 인구가 적은 구는 중구이다. 대한민국의 총생산 가운데 절반을 차지하는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는 지역으로 2018년 서울의 지역 내 총생산은 422조 원이었다.[3] 수도로서의 오랜 역사와 더불어 전통 건축과 명소가 밀집해 있는 도시로서 경복궁을 비롯한 조선의 5대 왕궁이 이곳에 위치해 있으며, 창덕궁, 종묘, 조선왕릉의 총 세 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근현대 건축 역시 수많은 명소가 자리해 있으며 대표적으로 N서울타워, 63빌딩, 롯데월드타워,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롯데월드, 코엑스, 파크원 등이 있다. 이와 더불어 오늘날 대한민국의 문화산업을 주도하는 도시로 자리잡고 있다. 서울특별시에는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의 센터가 이곳에 위치해 있으며, 여의도에는 국회가 위치해 있다. 지명어원, 명칭"서울"의 어원에 관해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하나,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수도를 뜻하는 신라 계통의 고유어인 서라벌에서 유래했다는 설을 유력하게 받아들이고 있다.[4] 이때 한자 가차 표기인 서라벌 원래 의미에 관해서도 여러 학설이 존재한다. 삼국사기 등에서 서라벌을 '금성'으로도 표기했다는 점과 신라까지 포함하여 "설[새: 新, 金]-벌[땅: 羅, 城]", 즉 '새로운 땅'이라는 뜻으로 새기는 견해가 있다. 고대-중세 한국어에서 서라벌에 관한 정확한 발음을 확실하게 확인한 게 없으며, 그 발음은 훈민정음 창제 후 "셔ᄫᅳᆯ"이라는 표기가 등장하고 나서 알게 되었다. 서울 한자 음차 표기로는 이십일도회고시, 한경지략, 증보문헌비고[5]의 서울(徐菀), 동사강목, 북학의의 서울(徐蔚), 대동지지의 서울(徐鬱), 앙엽기의 서올(徐兀) 등이 있다.[6] 이처럼 조선 시대 서울은 한양, 한성(漢城) 외에도 서울(셔ᄫᅳᆯ), 경도(京都), 경부(京府), 경사(京師), 경성(京城), 경조(京兆) 등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김정호의 수선전도에서 알 수 있듯 수선(首善)으로 표기한 예도 있다. 이 가운데 한양과 한성을 제외하면 모두 수도를 뜻하는 일반 명사로서 '서울'이 원래는 서울 지역(사대문 안과 성저십리)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닌 수도를 뜻하는 일반 명사였다는 방증이다. 서울이라는 단어는 한국어에서 일반명사로도 사용된다. 국어사전에서는 일반 명사 '서울'을 '한 나라의 중앙 정부가 있고, 경제, 문화, 정치 등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도시'라고 정의하고 있다.[7] 1910년 10월 1일에 일제가 한성부를 경성부로 개칭함에 따라 일제강점기에 서울은 주로 경성으로 불렸으나, 1945년 광복 후에는 경성 대신에 서울로 부르게 되었다.[8] 외국어 표기
서울 로마자 표기 'Seoul'은 19세기 프랑스 선교사들이 서울을 쎄-울(Sé-oul)로 표기한 데서 비롯했다. 오늘날 프랑스에서는 서울을 'Séoul'로 표기하고, 스페인어권에서는 'Seúl'로 쓰나 모두 '쎄울'로 읽는다. 또, 영미권에서는 일반적으로 'Seoul'로 쓰고 영혼을 뜻하는 단어 'Soul'처럼 '쏘울'로 읽는다. 서울시에서는 이러한 점을 착안하여 오세훈 서울시장 재임 기간인 2006년 11월 13일 서울시 서브슬로건(Sub slogan)을 《Soul of Asia》로 지정하였다. 서울은 순우리말 지명이기 때문에 서울이라는 한자가 존재하지 않아서 이전 중국에서는 서울을 한청(중국어 간체자: 汉城, 정체자: 漢城, 병음: Hànchéng, 한성)이라 불렀고, 1988년 서울올림픽도 한성올림픽이라고 불렀으나, 2005년에 서울시가 서울과 발음이 유사한 '셔우얼'(중국어 간체자: 首尔, 정체자: 首爾, 병음: Shǒu'ěr, 수이)을 서울 공식적인 중국어 표기로 정하면서 점차 이 표기가 확산되어 가는 추세다. 일본어 표기는 '소우루'(ソウル)다. 해방 이후에는 미군정청 문서에서, 서울특별시 영문 공식 명칭은 'Seoul Independent City'였다. 직역하면 "서울독립시"이나, 독립시라는 표현이 어색하다는 한국어 관점에 따라 "특별시"(영어: special city)로 번역한 게 굳어져 'Seoul Special City'로 되었다. 하지만 서울특별시청 홈페이지에서 서울특별시 공식 영어 명칭은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이다.[9] 역사
선사시대와 삼국시대오늘날 한강 유역에는 선사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으며, 대표적 유적지로는 암사동 선사주거지, 면목동 유적이 있다. 현 강동구에 위치한 암사동 유적은 그 조성연대가 기원전 6000년경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움집터와 빗살무늬 토기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원삼국시대에는 삼한 중 마한에 속하였다. 기원전 18년, 서울 동부 한강변에 백제의 수도 위례성이 세워졌다. 백제는 이후 500년 가까이 위례성을 수도로 삼았다. 475년 고구려의 장수왕이 이곳을 점령한 후 하남위례성에 한산군(漢山郡)을, 한강 이북에는 남평양(南平壤)을 설치하였다. 551년 백제는 신라와 동맹을 맺고 고구려에게서 서울과 한강 하류지역을 탈환했으나, 553년에 나제동맹을 깬 신라에게 공격당하여, 이 지역을 빼앗겼다. 이후, 신라는 옛 위례성 인근에 한강 유역을 관할하는 한산주의 치소(治所)를 설치하였다. 남북국 시대 북한산군과 고려 남경삼국통일 후 685년 신라는 서울의 한강 이북지역을 한산주가 관할하는 북한산군(北漢山郡)으로 이름하였다. 757년에 한산주를 한주(漢州)로, 북한산군을 한양군(漢陽郡)으로 개칭하였다. 고려 개국 후 918년 (고려 태조 1년)에 한양군을 양주(楊州)로, 940년(고려 태조 23년)에 한주를 광주(廣州)로 각각 개칭하였으며, 1067년(고려 문종 21년)에 양주가 남경(南京)으로 승격되었다. 1308년 남경을 한양부로 개편하였다가 1356년(공민왕 5년)에 한양부를 다시 남경으로 개칭하였다. 조선시대 한성부조선 태조는 1392년 개경에서 조선을 건국하고, 1394년 10월 남경으로 천도했다. 한양으로 도읍을 정한 데에는 풍수사상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으나, 한양의 도시계획 자체는 유교 이념에 바탕을 둔 도성제에 따라 건설되었다. 이듬해 1395년에는 한성부로 개칭하고 5부(部) 52방(坊)의 행정 구역을 확정했다. 한성부의 지리적 범위는 사대문 안 도성과 도성 밖 10리(약 4 km)까지의 성저십리(城底十里)로 구성되었다. 1398년 숭례문을 완공하였고, 1404년 경복궁을 준공하였다.[10]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조선 선조는 천도를 결정하고 의주로 피난하였다. 1592년 5월 일본군에게 점령된 한양은 이어진 혼란 속에서 경복궁, 창덕궁 등 주요 궁궐이 화재로 소실되는 일을 겪었다. 이후 1637년에도 병자호란 등 전란을 거치며, 도시의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후에 서서히 재건되었다. 구한말 시기 인천, 부산 등의 개항지와 더불어 한성에도 근대적인 기반시설의 도입이 이뤄졌다. 1887년 경복궁 건청궁에 전기를 처음으로 들여온 것을 시작으로, 1899년 서대문~청량리 단선전차를 처음 개통하였고, 1900년 한강 가교가 준공되었다. 1902년에는 한성전화소가 서울시내전화교환업무를 시작하였다. 1896년 환구단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황제는 정부와 함께 기존 법궁인 경복궁과 종각을 중심으로 하던 것에서 벗어나 경운궁을 중심으로 공간구조의 개편을 꾀하는 '한성 도시개조사업'을 실시하였다. 1895년부터 1903년까지 실시된 이 사업은 기존의 좁은 도로를 확장 정비하여 원활한 교통로 확보와 위생 개선을 동시에 꾀하였으며, 근대국가의 수도로 거듭나고자 하는 모습을 보였다.[11] 일제강점기1910년 대한제국의 국권을 침탈한 일본 제국은 한성부를 경성부로 개칭하고 경기도에 예속시켜 지위를 격하시켰으며, 조선 통감부와 조선총독부의 청사를 경성부에 두었다. 1911년 경성부의 하부기관을 5부 8면으로 구분하여 성 안은 동·서·남·북·중의 5부로, 성 밖은 용산·서강·숭신·두모·인창·은평·연희·한지의 8개 면으로 구분하였다. 1914년 면(面) 제도를 폐지하고 부제(府制)를 실시하면서 용산·숭신·인창·한지·두모면의 일부를 경성부에 편입시키고, 명칭은 정(町)으로 바꾸었다. 1936년 고양군·시흥군·김포군의 일부 면들이 편입되어 행정구역이 133.94km2로 확장되었다. 1943년에는 구제를 실시하여, 중구·종로구·동대문구·성동구·서대문구·용산구·영등포구 등 7개 구로 나누었다. 일제는 조선 개국 이후로 존재했던 서울의 역사성과 공간구조를 대대적인 정비계획에 따라 훼손시켰다. 1908년 전차선로 가설을 위해 성곽의 일부가 일본군에 의해 철거된 것을 시작으로,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도성의 성문이나 성벽 일부를 훼손하고 신작로나 철로가 개설되어 나갔다. 이 시기 일제 조선의 행정중심지로서 근대 건축물이 다수 들어섰으며, 경성부청, 경성역, 경성제국대학, 조선은행 본점, 부민관, 명치좌 등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광복 이후1945년 광복과 함께 경성부는 서울시로 개칭되었다. 1946년 9월 28일에 경기도에서 분리하여 서울특별자유시로 승격하였다.[12] 이는 1949년 8월 15일 서울특별시로 다시 개칭되었으며, 고양군 뚝도면·숭인면·은평면과 시흥군 도림리·구로리·번대방리 등이 편입되어 시역이 268.35 km2로 확장되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대한민국 정부는 수도를 부산으로 이전하였고, 6월 28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처음으로 점령하여 임시수도로 삼았다. 9월 28일에 대한민국이 수복하였으나, 1.4 후퇴 때 다시 서울을 내주고 폐허가 되었다. 1951년 3월 14일에 다시 서울을 수복한 뒤 1953년 정전 협정까지 대한민국의 점령지로 남았다. 1962년 서울특별시행정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되어 국무총리 직속기구가 되었고, 시장의 행정적 지위도 장관급으로 격상되었다. 같은해 경기도 광주군·양주군·시흥군·김포군·부천군의 7면 54리를 편입하고 시역을 대규모로 확장하여 593.75 km2가 되었다. 이 때 이른바 강남 등 서울의 한강 이남 지역이 대거 편입되었고,[13] 한강 이북에서는 동북부의 도봉구, 노원구, 중랑구 일대가 편입되었다. 1973년 도봉구와 관악구가 신설되어 11개구가 되었고, 605.33 km2로 시역이 확장되었다. 이후 기존의 행정구역을 분리하여 1975년 강남구, 1977년 강서구, 1979년 은평구, 강동구, 1980년 동작구, 구로구, 1988년 중랑구, 노원구, 양천구, 서초구, 송파구, 1995년 강북구, 광진구, 금천구가 신설되고 광명시의 일부 지역이 금천구로 편입되었다 1988년 하계 올림픽, 2000년 서울 아시아·유럽 정상회의, 2002년 FIFA 월드컵, 2010년 G20 정상회의 등의 국제적인 스포츠 대회와 정상회의를 개최하였다. 서울 주변의 인천과 경기도의 위성도시들이 성장하면서, 서울을 중심으로 거대한 도시 구조인 수도권이 형성되었다. 지리서울은 한반도 중서부에 위치하는 분지 지형의 도시이다. 시 중심으로 한강이 흐르고, 서울 도심에는 남산과 인왕산이 있다. 시 주변으로 북한산, 관악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구룡산, 우면산, 아차산 등이 서울을 둘러싸며 경기도 및 인천광역시와 자연적 경계를 이루고 있다.[14] 동서 간의 거리는 36.78 km, 남북 간의 거리는 30.3km이며, 면적은 약 605.25 km2이다. 서울의 면적은 대한민국의 0.6%이며 남북한 면적의 0.265%이다. 서울특별시의 최북단은 도봉구 도봉동이고 최남단은 서초구 원지동이며 최동단은 강동구 강일동, 최서단은 강서구 오곡동이다. 산서울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북한산(삼각산)을 최고점으로 한 고양·양주구릉과 경기평야가 만나는 지대에 있다. 주위에는 북한산(836m)·도봉산(717m)·인왕산(338m)·관악산(629m) 등 500m 내외의 산과 구릉이 자연성벽과 같이 둘러싸고 있는 분지이다. 광주산맥의 한 줄기인 도봉산은 백운대·인수봉·노적봉의 3개 봉우리가 솟아 있는 북한산과 이어져 있고, 그 산줄기는 다시 남으로 뻗어 북악산(342m)을 솟게 하였다. 그리고 북악산에서 동으로 뻗은 산줄기에 낙산(125m), 서로 뻗은 산줄기에 인왕산이 있다. 인왕산에서 뻗은 산줄기 중 남쪽으로 뻗은 것은 숭례문을 지나 남산(265m)·응봉(175m)과 이어져 있고, 서쪽은 무악재의 안부(鞍部)를 지나 안산(296m)과 이어져 있는데 모두 구릉성 산지이다. 한강 남쪽에는 100m 이하의 구릉지가 펼쳐져 있고, 남쪽에 천연의 요새와 같이 서울의 외곽에 솟아 있는 관악산(629m), 청계산(618m), 구룡산(306m), 우면산(293m) 등이 있다. 그 외에 서울 동부에 불암산, 수락산, 망우산, 아차산 등이 있다.[14] 하천서울의 중심에는 한강 하류가 동에서 서쪽으로 흐르고 있다. 하류이기 때문에 구배는 완만하며 물의 흐름은 느리나, 홍수 때는 상·중류의 유역 지방으로부터 흘러내려오는 물 때문에 수위가 높아진다. 여의도는 상류로부터 운반되어 온 토사가 퇴적된 하중도이다. 한강물은 서울시민의 수돗물로도 공급되는데, 과거에는 뚝섬과 선유도 등에도 취수장이 있었으나 현재는 잠실 수중보와 팔당 저수지로부터 물을 끌어들여 공급하고 있다.[14] 한강은 일제강점기까지 별다른 정비가 없었다가, 1960년대 이후 한강을 정비하는 사업이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1968년 밤섬을 폭파한 뒤 여의도를 개발하였고, 1970년부터 1975년까지 잠실 개발계획으로 잠실섬과 부리도의 남쪽 물길(송파강)을 막아 육지로 만들었다. 1982년 시작된 '한강종합개발사업'을 통해 둔치를 조성하고, 강변 양쪽에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를 놓았다. 2006년에는 한강 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한강 주변을 다시 정비하였다. 한강 이외의 주요 하천으로는 불광천, 안양천, 중랑천, 청계천, 탄천, 양재천, 여의천, 홍제천 등이 있다. 임야서울의 임야 면적은 2006년을 기준으로 157.35 km2으로, 임야의 51.5%는 국공유림이고 49.5%는 사유림이다. 임야의 분포는 산이 많은 노원구에 17.73 km2, 관악구에 17.53 km2, 강남구에 16.11 km2가 있어서 전 임야의 32.6%를 차지하고 있다. 이 임야의 많은 부분이 개발 제한 구역으로 묶여 있어서 임야는 잘 보호되고 있는 편이긴 하지만, 임야 면적은 매년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15] 도심서울 도심 주변에는 도심을 관통하는 청계천의 계속된 침식으로 북악산과 남산에서 산기슭이 발달되어 기복이 많은 지형이 되었다. 을지로에 있던 구리개, 조선일보사 앞의 황토현(黃土峴)이란 기복은 가로공사와 도시개발에 따라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없으나, 현재도 율곡로·퇴계로·을지로 곳곳에서 기복을 찾아볼 수 있다.[14] 이러한 기복 때문에 이 지역에는 고개 또는 현(峴)이란 지명이 남아 있다. 이러한 지명에는 충무초등학교 부근의 풀무고개 또는 대장고개(治峴), 인현(仁峴)·종현(鍾峴)·진고개(泥峴), 계동(桂洞) 일대에 관상감현(觀象監峴), 가회동 일대에 맹현(孟峴)·홍현(紅峴)·안현(安峴)·송현(松峴)·배고개(梨峴) 등이 있다.[14] 풍수설에 따라 북악산 기슭에는 경복궁·창덕궁·창경궁·종묘, 인왕산 기슭에는 덕수궁을 지었고, 궁궐 사이는 궁인(宮人)·귀족·고관 들의 저택지로 이용하였다. 이 지역의 침식으로 운반된 토사는 청계천 연안에 퇴적되어 평탄한 시가지를 형성하게 하였다. 따라서 도심지에서 가장 평탄한 곳은 청계천 북쪽의 연안으로 동대문에서 세종로 사이의 종로이며, 이곳에서는 지형의 기복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14] 삼각지로부터 해발고도 20m의 갈월동을 지나면 지형이 차차 높아져서 서울역 앞에 오면 더욱 높아지기 시작하고, 숭례문 부근은 해발고도가 40m 내외가 된다. 이곳은 분수계(해발 36.6m)가 되어, 동으로는 청계천이 동으로 흘러 중랑천과 합류한다.[14] 지질한반도 내의 선캄브리아기에 형성된 경기 지괴 내에 위치한 서울의 지질은 주로 선캄브리아기의 편마암류와 이들을 관입한 중생대의 화강암류로 구성되며, 하천을 중심으로 이 모두를 부정합으로 덮는 제4기의 충적층이 분포한다.[16] 선캄브리아기의 암석 중 가장 주된 것은 서울도폭(1982)에서 정의된 호상흑운모편마암(PCEbngn; Precambrian biotite gneiss)이다. 지형적으로 저지대를 이루면서 강서구 화곡동, 서대문구, 마포구, 용산구, 은평구, 영등포구, 동작구, 강남구, 서초구 등지에 분포한다.[17] 이 암석은 경기편마암복합체의 일부로서, 이 지역 내에서는 가장 오래된 암석으로 기저(基底)를 이루고 있다.[16] 서울 동부지역으로 가면 선캄브리아기의 암석이 조금 더 세분화되어, 논현동 일대에 분포하는 안구상 편마암(PCEagn)이나 강남구, 송파구, 강동구 일대에 흩어져 분포하는 운모편암(PCEms) 등으로 분류된다.[18] 중생대의 화강암인 서울 화강암(Jsgr; Jurassic Seoul granite)은 서울시 북부인 중구, 동대문구, 성북구, 종로구, 노원구, 북한산 지역에 분포한다. 이 화강암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넓게 분포하는 주요 화강암인 대보 화강암의 일부이며, 선캄브리아기의 편마암류를 관입하고 있다.[17][16] 박병권(1972)에 의하면 서울 화강암의 Rb-Sr 절대연령은 160±10 Ma로 중기 쥐라기에 해당한다.[19] 서울 화강암의 최대 압축 강도는 1100~1440 kg/cm2이며 서울 화강암 내에 단층과 절리를 생성시킨 압력은 평균 1200 kg/cm2이다.[20] 서울특별시를 지나는 신갈 단층은 한반도 경기 지괴 내 연천군에서 성남시 분당구 등을 지나 평택시까지 이어지는 연장 130km의 주향 이동 단층이다.[21][22] 추가령 단층대의 일부이며, 뚝섬 지질도폭(1981)에 의하면 북쪽으로 의정부도폭(2005), 남쪽으로 둔전도폭(1982)으로 이어지는 남-북 주향의 대규모 단층이다.[18] 화강암은 조립질이면서 다른 암석과는 다르게 절리(節理)가 잘 발달하고 풍화작용에 약하며, 도봉산·백운대·인수봉과 같은 봉우리가 기암절벽을 만들어 서울 특유의 절경을 보여 주고 있다. 홍제동·안암동·창신동·장위동 등지의 화강암은 1990년대까지만 하여도 건축재로 쓰이곤 했다.[23] 화강편마암은 견고한 암석이지만 접착성이 적기 때문에 쉽게 붕괴되어 봉우리를 이루지 못하나, 작은 기복을 이룬 노년기 지형을 나타내주고 있다. 특히 동작동 부근의 화강편마암은 판형으로 쉽게 벗겨져 온돌의 구들장으로 쓰였고, 화강편마암이 풍화되어 된 천호동의 점토는 벽돌과 옹기 제조의 원료로서 많이 쓰였다.[23] 기후서울은 냉대 동계 소우 기후[24](쾨펜의 기후 구분 Dwa)[25] 또는 온대 하우 기후(Cwa)에 속하며, 습윤 대륙성 기후로 분류하기도 한다. 기온의 연교차가 큰 대륙성 기후이다. 최근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온 상승으로 인해 최한월 평균기온이 영하 3 °C보다 높은 -2.4 °C로 높아져 대한민국 기상청은 온대 하우 기후로 변경했다. 그러나 이는 열섬 현상으로 인한 것으로 외곽 지역은 여전히 -3 °C 미만으로 내려간다는 점과 냉대 기후의 최한월 평균기온 기준을 0 °C 미만으로 간주하는 경우도 많다는 점에서 온대기후와 냉대기후의 중간 정도 되는 기후이다. 여름 기온과 겨울 기온의 연교차가 28.1 °C로 매우 크기 때문에, 겨울은 매우 춥고, 여름은 몹시 무덥다. 최근 30년(1991년~2020년) 기준으로 서울의 연평균 기온은 12.8 °C 이고, 최난월인 8월 평균 기온은 26.1 °C, 최한월인 1월 평균 기온은 -1.9 °C이다. 특히 최한월의 평균 기온은 같은 위도 상의 다른 도시에 비해 낮은 편이다. 시내의 기온 분포는 중구와 같이 가옥이 밀집한 곳과 많은 자동차가 배기가스를 뿜으며 지나는 간선도로, 그리고 도심부의 포장도로가 지나는 지역이 가장 기온이 높고, 한강 연안과 가옥의 밀집도가 낮은 지역은 기온이 낮게 나타나고 있다. 도심의 기온은 여름철의 6, 7, 8월 3개월을 제외하고는 해가 거듭될수록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이 상태로 계속 기온이 높아진다고 가정하면 약 100년 간에 평균기온은 1.8 °C, 일 최저 기온의 연평균치는 3.1 °C씩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시내의 습도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23] 계절은 여름이 가장 길고 그 다음 겨울, 봄 순서대로이고 가을이 가장 짧다. 봄은 3월 중순부터 시작되는데 월평균 기온이 5 °C 이상으로 올라가고 날씨는 맑고 따뜻해진다. 그러나 제트기류가 서쪽에서 불어올 때 황사가 일어나기도 한다. 여름은 20 °C 이상의 기온이 계속되며 7, 8월에는 30 °C 내외, 심하면 35°C 이상의 무더운 날씨가 많다. 또한 장마나 집중호우가 계속되어 많은 비가 내리므로 홍수의 피해가 크다. 가을은 하늘이 높고 맑은 날이 계속되며, 기온은 차차 내려가 선선한 날씨가 시작된다. 겨울은 최저 기온이 0 °C 이하로 내려가는 날이 100일 내외, 최저기온이 -10 °C 이하로 내려가는 날이 29.4일로서, 추운 날이 비교적 오래 지속되고 있다. 눈이 내리는 기간은 12.5일, 얼음이 어는 기간은 16.4일이나 강수량은 여름에 비하면 훨씬 적어 건조한 날씨가 많다. 최근 30년(1991년 ~ 2020년) 기준으로 연평균 강수량은 약 1,417.9mm이나, 1990년에는 2,355.5mm, 1949년에는 633.7mm가 내릴 정도로 연 강수량의 기복이 심한 편이다. 계절별 강수량은 여름철에 892.1mm, 겨울철에 67.3mm로 여름철에 강수가 크게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한반도는 계절풍 지대에 속하기 때문에 서울은 여름에 남동풍, 겨울에 북서풍이 빈번하게 분다. 도심부에서 도로 위를 부는 도로바람은 남산의 북사면에서 발달한 차가운 공기가 충무로 지하상가 위를 지나 을지로 입구 쪽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퇴계로 2가 부근에서 바람이 가장 강하게 분다. 역대 최저 기온은 1927년 12월 31일의 -23.1 °C, 역대 최고 기온은 2018년 8월 1일의 39.6 °C이다.
대기시내에는 큰 건물과 공장의 굴뚝에서 내뿜는 매연, 자동차의 배기가스 등의 오염물질이 늘어나면서 태양광선이 제대로 땅에 닿지 못하고 있으며, 따라서 시내에 내리쬐는 일사량은 매년 감소되어 가고 있다. 비행기나 높은 산 위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면 연기와 먼지를 품은 오염대기층인 연진모자가 상공을 덮고 있어 서울 시야를 나쁘게 하고 있다.[23] 2011년 환경부가 7대 도시의 대기 오염물질을 조사한 결과, 전국의 미세먼지 평균농도는 51㎍/m3이고,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는 49㎍/m3로 나타났다. 2013년을 기준으로 하여 서울시는 전국 16개 지방(서울, 부산, 대구, 경기, 제주, 전남 등)에서 8위(7위: 대구 9위: 전북)를 하였고, 광역시나 특별시 중에서는 4위(3위: 대구 5위: 울산)를 하였다.(중위권) 그러나 최근, 수년 동안 서울시에서는 청정연료 확대보급, 경유자동차 저공해화, 도로비산먼지 청소, 공사장 비산먼지 관리 등과 같은 대기질 개선활동을 집중적으로 전개해 오면서 대기질이 좋아지기 시작했으나, 황해 근처에 위치하고 있는 중국의 수많은 공장에서 뿜어져나오는 매연에 서울의 대기질은 겨울과 봄에 최악을 기록하고 있으며, 미세먼지 농도가 100㎍/m3을 훌쩍 뛰어넘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출처 필요] 하지만 2020년 코로나19 상황과 역대 가장 긴 장마 때문에 서울의 미세먼지는 110일 동안 보통 이하를 기록하기도 하였다.[29] 정치중앙정치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로서, 입법부·행정부·사법부 등 국가의 통치 기관이 집중되어 있다. 종로구에는 청와대와 정부서울청사를 비롯한 중앙 행정 기관과 헌법재판소 등 국가 중요 기관이 있고, 중구 정동에는 각국의 외교 대사관이 밀집해 있다. 또한 여의도에는 국회가, 서초구에는 대법원을 비롯한 법조 단지가 형성되어 있다.
지방정치서울특별시의 행정부 수장은 서울특별시장이며 직선제와 3선 연임제를 채택하고 있다. 현 시장은 2022년에 취임한 국민의힘의 오세훈이다. 서울특별시의 입법부는 서울특별시의회이며 의석수 정원은 112인, 임기는 4년이다. 소선거구제와 더불어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다. 서울특별시장과 서울특별시의회는 서울특별시교육청장과 함께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선출된다. 행정 구역서울특별시의 행정구역은 2022년 5월말 기준으로 25개 자치구와 426개 행정동이 있다. 한강 남쪽에 11개, 한강 북쪽에 14개 자치구가 있다. 2020년 4월말 주민등록 인구는 9,726,787명이다.[30] 가장 인구가 많은 구는 송파구, 가장 인구가 적은 구는 중구이다.
선거구22대 국회의원 선거 기준 48개 선거구로 나뉜다. 주민등록 인구(외국인 제외)에 따라 29만5천 명 미만인 자치구는 1개, 29만5천 명 이상 ~ 59만 명 미만인 자치구는 2개, 59만 명 이상인 자치구는 3개의 선거구를 가진다. 인구
고려 멸망 후 조선이 천도(1394년)한 후 조선 태종 때 인구는 약 10만 명이었으며, 이후 1900년대까지 20만 명 선을 유지하였다. 일제강점기 이후 서울의 인구는 지방 인구의 도시집중 현상으로 급격하게 늘어나여 과밀화 현상을 빚고 있다. 1919년에 인구 25만 명, 인구밀도 6,874명/km2이었던 것이 1925년에는 인구 34만 명, 인구밀도 9,297명/km, 1930년에는 인구 33만 명, 인구밀도 9,824명/km2, 1935년에는 인구 40만 명, 인구밀도 11,172명/km2에 달하였다. 이에 따라 1936년에 시역을 확장하여 인구는 73만 명으로 증가하고 인구밀도는 5,430명/km2으로 감소하였다. 1945년 광복 당시의 인구는 90만 명, 인구밀도 6,628명/km2이었는데, 외국에서의 귀국, 한반도 북부지역 출신 등으로 1946년에는 인구가 127만 명으로 급격하게 증가하였고, 인구밀도는 9,309명/km2이 되었다. 1948년에는 인구 171만 명에 인구밀도 12,055명/km2으로, 1949년에는 136.05 km2이었던 시의 면적이 268,35 km2로 확장되었고 인구는 142만 명, 인구밀도는 5,284명/km2이 되었다. 1951년에는 한국 전쟁으로 인구가 65만 명, 인구밀도는 2,416명/km2으로 급격하게 감소하였다. 그러나 1953년에 휴전과 환도로 다시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하여 1955년에는 인구 157만 명, 인구밀도 5,869명/km2, 1960년에는 인구 245만 명(전체 인구의 10%), 인구밀도 913명/km2, 1970년에는 인구 543만 명(전체 인구의 18%), 인구밀도 9,013명/km2, 1980년 인구는 836만 명, 인구밀도 13,074명/km2, 1990년에는 1,061만 명, 인구밀도가 15,532명/km2이 되었다. 이렇게 계속 증가하던 인구도 1992년 인구 1,099만 명, 인구밀도 19,522명/km2을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는 정부의 서울 인구 분산 정책에 따른 것으로. 서울 교외에 분당·일산·평촌·중동과 산본 등의 1기 신도시가 개발되었고 이 마저도 포화상태로 현재 운정, 판교, 동탄 등 2기 신도시 개발에 따른 이주에 의한 것이다.[32] 계속 감소하던 인구는 2003년 인구 1,028만 명, 인구밀도 16,975명/km2을 정점으로 다시 증가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뉴타운'으로 불리는 서울 시내 대규모 재개발로 인한 인구 유입의 영향이 크다. 2009년 12월말 기준 인구는 10,464,051명, 4,116,660세대이고, 인구밀도는 17,289명/km2이다. 서울의 인구증가를 보면 1960년경부터 대한민국의 경제성장과 함께 각종 산업이 발전하면서 고용 증대가 이루어졌고 이에 따라 농촌인구가 급격하게 서울로 집중하게 되었다. 서울 지킴자금 Archived 2022년 2월 5일 - 웨이백 머신 농촌에서는 생계가 어려워 무작정 서울로 온 이농 인구 덕분이었다.[33] 서울은 자연증가보다 사회증가에 의하여 과밀화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또한 서울에는 교육기관이 많이 분포하고 있어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은 주로 서울에서 취업을 하거나 생활 터전을 마련한다.[34] 다만, 2010년대 들어 서울의 높은 전세로 인해 서울의 인구순유출 속도가 한국 도시들 중 가장 빠르며, 2016년 5월을 기점으로 서울 인구가 1,000만명 선 아래로 떨어졌다. 사실상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1,000만명을 넘어선 서울의 인구가 28년만에 1,000만명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2018년 5월 기준으로 서울의 인구는 980만명이다. 서울을 빠져나가는 대부분의 인구는 경기도로 이동하고 있으며, 세종시나 제주도로의 이동도 이루어지는 역도시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인구와 가구 그래프일제강점기이 글을 보려면 오른쪽 '펼치기' 버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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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2014년 서울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327조 6,020억 원이며, 실질성장률은 2.2%이다.[35] 삼성, LG, 현대자동차, SK, 롯데, GS 등 주요 대기업의 본사가 있다. 대한민국 GDP의 22%를 창출하고 있으며, 금융 기관의 50% 이상이 집중되어 있다.
공업서울의 공업은 1919년에 영등포에 세워진 방직공장을 시초로 한다. 영등포에는 그 외에도 피혁공장과 철도공작창이 지어졌으며, 1940년대 들어서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일본의 군수물자 조달을 목적으로 영등포와 용산을 중심으로 군수 산업이 발달하였다. 8·15 광복과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잠시 침체 상태에 있었으나, 1962년부터 시작된 국가 주도의 경제 개발로 인해 서울의 공업은 급속도로 발달하였다. 1971년 형성된 구로동 수출산업공단은 섬유·전자기계·고무합성수지제품·금속·광학기기류 등의 생산으로 서울 최대의 산업단지가 되었으며, 인근의 영등포 기계공단과 묶여 경인공업지구를 형성하였다. 1990년대 초까지 용산·영등포·천호동·노원구 등에 공업지구가 형성되어 있었으나, 수도권이 팽창하면서 인천·시흥·안산·부천 등 인근 지역으로 옮겨갔다. 2000년대 들어 첨단산업이 발달하면서 구로동·가산동 지역의 대규모 공단이 디지털산업단지로 탈바꿈하여 현재는 수많은 IT 벤처 기업이 있다.[37] 상업서울의 상업은 4대문 안 서울 도심인 종로·남대문로·충무로·명동·을지로와 청계천 등의 상가와 남대문시장·동대문시장·중부시장 등의 시장과 백화점, 대형 할인점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1960년대 들어 대단위 슈퍼마켓과 연쇄점·지하상가가 시내 요소에 설치되어 새로운 상가를 형성하였다. 전문상가로는 전국에 의류를 공급하는 남대문 의류상가와 동대문 평화시장,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 노량진수산시장, 용산전자상가, 경동시장 등이 있다.[38] 업무 지구교육서울대학교, 서울시립대학교, 서울과학기술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체육대학교 등 국공립 대학교와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 서강대학교, 성균관대학교(인문사회캠퍼스), 한양대학교, 중앙대학교, 경희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건국대학교, 동국대학교, 광운대학교, 홍익대학교, 국민대학교, 숭실대학교, 세종대학교 등 사립 대학교들이 소재하고 있다. 대학교 40개교, 교육대학 1개교, 방송통신대학교 1개교, 전문대학 12개교 등이 있다.[39]
문화서울은 대한민국 문화 활동의 중심지가 되고 있으며 도서관·박물관·출판사·공원과 기타 문화 시설들이 집중되어 있다. 관광서울은 최근 K 문화의 인기로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어 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다. 서울관광재단에서는 서울 여행을 계획하거나 서울을 여행중인 관광객들을 위해 '비짓서울'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 공식 관광 정보 웹사이트인 '비짓서울'은 서울에서 개최되는 각종 행사, 축제, 전시 정보는 물론이고 명소, 맛집, 쇼핑 등 다양한 관광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관광 정보를 발 빠르게 제공하여 관광객들이 서울을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비짓서울'은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간체, 중국어 번체, 러시아어, 말레이어 총 7가지 언어를 제공한다. 문화재, 박물관서울에는 132개의 국보, 380개의 보물, 61개소의 사적, 11개의 천연기념물, 32개의 무형문화재, 46개의 중요민속자료 등이 있다. 또한 경복궁 등의 고궁과 각종 공원 등이 있어 시민들과 외국 관광객들에게 좋은 휴식처와 관광 명소가 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등 60여 개의 박물관이 있다.
도서관서울에는 시립 도서관 23개 소가 있으며, 시립 도서관의 경우 대부분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 운영하고 있다. 그 외에도 각 자치구에서 설립한 구립 도서관이 있다. 최근 구립 도서관의 숫자가 늘고 있는 추세이다. 장서(藏書) 100만여 권을 가진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 그외에도 공공 및 사립도서관, 대학도서관 등이 있다.[39] 공연 시설
유적지
고궁
서울시티투어버스는 광화문을 기점으로 서울의 중심 관광지를 순환하고 있다. 명소
공원
종교 시설
주요 의료 기관
축제스포츠서울은 1986년 아시안 게임, 1988년 하계 올림픽, 1988년 하계 패럴림픽을 개최하였으며 2002년 FIFA 월드컵의 개막전과 4강전을 비롯한 총 3경기가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치러졌다. 서울특별시 송파구에는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하계 올림픽의 개막식, 폐막식이 있었던 서울올림픽주경기장과 이를 기념하는 올림픽공원이 있으며, 마포구에는 월드컵공원이 있다. 노원구에는 종합선수합숙훈련장인 태릉선수촌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프로스포츠팀을 보유한 도시이며 특히 프로스포츠 양대 산맥인 프로축구 K리그와 프로야구 KBO 리그에서 1990년 럭키금성 황소와 LG 트윈스 그리고 2016년 FC 서울과 두산 베어스의 2차례 동반 리그 우승을 달성하였다.[50] 서울의 운동 경기장으로는 잠실에 잠실종합운동장, 목동에 목동운동장, 성산동에 서울월드컵경기장이 있다.[39] 축구
야구
농구
배구
스포츠 시설
교통승용차와 대중교통인 지하철, 버스, 택시 등이 주된 시내 교통 수단이다. 주요 환승지로는 1호선 서울역, 영등포역, 용산역,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센트럴시티, 동서울종합버스터미널, 남부터미널, 1,2호선 시청역, 2호선 강남역, 신도림역, 2,4호선 사당역 등이 있다. 2007년 말 기준으로 자동차 등록 대수는 2,933,286대로 수송 분담률은 2006년 기준으로 지하철 34.7%, 버스 27.6%, 택시 6.3%, 자가용이 26.3% 등이다. 1899년부터 운행하던 전차가 1968년 없어지면서 서울의 대중 교통 수단은 많이 달라졌다. 1966년부터는 시가지의 대폭적인 재개발로 건물의 고층화와 함께 도로의 입체화가 진전되었다. 대중 교통 수단의 재배치는 서울 도시 구조에 매우 큰 영향을 끼쳐왔다. 대표적인 예로 1기 지하철, 특히 당초 계획과는 달리 거대 순환선으로 변경된 2호선이 서울의 공간에 끼친 영향을 들 수 있다. 도로경부고속도로, 서해안고속도로, 용인서울고속도로 등이 남쪽으로 이어져 있으며,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와 경인고속도로는 서쪽에 있는 인천광역시와 연결된다. 시 외곽에는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가 둘러싸고 있다. 도시 내부에는 강변을 따라가는 강변북로, 올림픽대로, 내부순환로, 동부간선도로, 서부간선도로, 남부순환로, 북부간선도로 등의 간선도로가 건설되어 있다. 강변북로[51]는 고양시와 파주시, 올림픽대로는 인천광역시와 부천시, 동부간선도로는 성남시와 의정부시, 서부간선도로는 안양시와 광명시, 북부간선도로는 구리시와 연결된다. 서울시내의 주요 도로로는 테헤란로, 세종대로, 종로, 강남대로, 시흥대로 등이 있다. 시내버스서울에서 버스가 처음으로 운행을 하기 시작한 때는 1928년으로, '경성 부영버스'라는 이름으로 10대를 운영했다. 1949년 17개 회사가 서울시로부터 면허를 받고 버스 운영에 뛰어들었다. 이후로 여러 차례의 확장과 개편을 거쳤으며, 2004년 서울특별시 버스 개편으로 버스 준공영제와 환승할인 제도가 도입되었다. 현재 시내버스, 간선버스, 마을버스, 광역버스 등을 포함한 수백개의 버스노선이 시내를 연결하고 있다. 택시서울에서 택시는 1912년에 처음 운행을 시작하였고, 1919년 최초의 택시회사가 설립되었으며, 1926년에는 미터기가 도입되었다. 8·15 광복 후에도 발전을 거듭하여 1970년 콜택시가 등장하고[52], 1988년에는 콜택시 대체용으로 도입된 중형택시[53], 1992년에는 모범운전수가 운전하고 콜택시를 도입하는 등 서비스 수준을 높인 모범택시가 선을 보였다.[54] 또한 2009년에는 소형택시 부활이 결정된 이후 2011년 12월부터 소형택시 70여대가 운행되고 있다.[55][56] 2015년 10월에는 고급택시가 운행을 시작했다. 2020년을 기준으로 서울시 소형택시의 기본요금은 2100원, 중형택시는 3800원, 모범택시는 5000원, 고급택시는 8000원이다. 철도서울은 한반도 철도의 중심지 지역답게, 서울에서 다른 도시간을 잇는 철도 교통이 골고루 발달되어 있는 지역이다. 지역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역이 나뉘어 있어, 서울역에서는 경부선과 경전선 KTX, 용산역에서는 호남선·전라선·장항선, 청량리역에서는 중앙선·태백선·영동선 강릉선열차가 출발한다. 그 외에도 영등포역 등의 중간역에서 열차를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인천국제공항에서 인천국제공항철도를 이용하여 서울역까지 접근할 수 있다. 또한 철도관제센터 또한 서울에 위치해 있어 그곳에서 대한민국 전역의 모든 철도를 총괄 관리 및 명령한다. 1968년 서울전차의 퇴역으로 이를 대신할 대중교통수단 건설이 논의되었고, 1974년 수도권 전철 1호선의 개통으로 본격적인 도시 철도 시대를 열었다. 1기 지하철 사업으로 2호선, 3호선과 4호선이 개통되었고, 그다음 2기 지하철 사업으로 5호선, 6호선, 7호선, 8호선이 새로 건설되어 추가되었다. 이후 9호선이 건설되면서, 현재 한국철도공사 관할 구간을 제외하고 9개 노선이 운행하고 있다. 서울의 도심과 부도심을 이어주며, 특히 서울 지하철 2호선의 개통은 서울의 공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서울 지하철 5호선의 경우에는 최초로 한강 아래로 터널을 뚫어 운행을 시작했다. 서울 지하철 1호선을 포함한 일부 노선은 한국철도공사의 수도권 전철과 연계 또는 직결 운행하여 서울 주변의 위성도시들을 연결한다. 항공동아시아 (일본, 중화인민공화국, 중화민국) 단거리 국제선과, 대한민국 국내선은 주로 김포국제공항을, 나머지 중장거리 국제선은 인천국제공항을 이용한다. 서울 도심에서 인천국제공항까지는 약 1시간 정도가 소요되며, 인천국제공항철도 또는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접근할 수 있다.
공항철도
수상 교통과거에는 뚝섬과 마포에 포구가 있어 번창하였으나, 육상교통이 발달되면서 자취가 사라졌다. 또한 노량도(서울 시흥)·양화도(서울 인천)·한남도(서울 용인)·송파도(서울 광주)·광나루(서울 광주) 등의 나루터가 있었으나 한강대교가 가설된 후부터 옛날의 나루터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한강 개발 이후가 된 후 관광용으로, 또한 통근용으로 수상 교통의 부활이 이루어졌다. 한강종합개발사업의 일환으로 1986년 10월 26일부터 관광용 한강 유람선 운행을 시작했다. 여의도와 잠실 등 8개 선착장에서 운행하고 있다.[57]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07년 10월 11일부터 한강 수상택시 운행을 시작했다. 여의도와 잠실 등 한강변 18개 승강장에서 운행하고 있으며, 교통수단 뿐만 아니라 관광용으로 이용되고 있었으나 운항정지 중이다. 기업방송
언론
금융
벤처유통자동차통신식품IT화학항공공기업
자매 도시서울특별시는 2014년 2월 기준 20개국, 24개 해외 자매도시들과 교류를 하고 있다.[58]
같이 보기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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