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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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춘호(1961년 8월 5일~)는 대한민국의 기타리스트이다. 생애예원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하던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기타를 시작하였고, 고3이던 1979년에 가수 전인권을 만나 그룹 '전인권과 함춘호'라는 그룹으로 잠시 듀엣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대중음악인의 길로 나섰다. 이후 들국화의 시초가 되는 프로모션 음반에서 기타를 담당했고 들국화에 들어갈 멤버를 추천해주기도 했지만(허성욱 등) 이후 전인권과는 다른 길을 가게 되며 들국화의 멤버가 되지는 않았다(불화는 아닌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전인권, 최성원과는 지속적인 교류가 있었던 듯). 1984년 하덕규가 이끌던 포크 록 그룹 시인과 촌장에 합류하였고, 2집 음반 《푸른 돛》의 참여하면서 기타리스트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1986년에 발매된시인과 촌장 2집 《푸른 돛》은 2007년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의 14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 앨범에서 함춘호는 전통적이지 않은 그 만의 기타 플레이와 매우 유려하고 정갈한 연주로 큰 주목을 받았고, 평론가들은 함춘호의 기타가 없었다면 하덕규의 음악이 빛을 발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언급하곤 한다.(기타 뿐만 아니라 전곡의 편곡또한 주도했거나 최소한 공동참여를 했다.) 이렇게 명성을 쌓은 후 80년대 중후반부터는 세션으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데 특히 80년대 후반~ 90년대의 좀 유명하다 싶은 곡에는 모두 함춘호의 기타가 들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세션계 최고의 인기를 자랑했다. 최전성기가 90년대일뿐 이는 00년대에 들어서도 거의 마찬가지이며 오늘날 (2020년 기준)까지 통틀어 약 40년간 최고의 기타리스트로서 현역 활동을 하고 있다. 그간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꾸준히 활동하면서 조용필, 송창식, 양희은, 전인권, 이문세, 김광석, 김현식, 이선희, 임재범, 신승훈, 이승철, 김현철, 토이(유희열), 김건모, 이소라, 윤종신, 김동률, 김연우, 김경호, 윤도현, 박효신, 성시경, 백지영, 아이유, 박정현 등 최고의 가수들부터 여러 아이돌까지 수많은 유명 가수들의 음반 세션 및 공연 연주자로서 활약했고 모든 대중음악계 전문가들 및 제작자들에게서 인정받는 자타공인 대중음악계의 거장으로 손꼽히고 있다. 어쿠스틱과 일렉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함춘호는 연주실력 자체만으로도 독보적이지만, 다른 연주자들에게서 나오지 않는 독특하고 따뜻한 느낌을 구현한다는 점이 큰 장점이라고 여겨지곤 한다. 또한 함춘호는 세션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부족했던 시절에 연주자의 위상을 높여준 인물로 평가받는다. 시대를 선도한 그의 연주는 이제 대중음악 기타 연주의 표준으로 연구되고 있으며 그만의 아름다운 기타톤과 어쿠스틱 감성은 지금까지도 대체불가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최근에는 단독 콘서트나 여러 장르의 뮤지션과 협업하며 솔로 아티스트로서 활약하고 있다. 오랜 세월 함춘호라는 이름만으로 음악계 종사자들과 대중에게 묵직한 신뢰감을 주는 명실상부 한국 대중음악계의 독보적인 연주자이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는 여전하며 오히려 더욱 견고해져만 가는 중. 송창식 왈 "대한민국의 기타, 함춘호입니다." 유희열 왈 "그는 나의 영웅이며, 한국 음악사에서 가장 중요한 연주자를 한 명 뽑는다면 함춘호라고 말할 것." 신승훈 왈 "단순 기타의 장인이 아닌, 말 그대로 음악계 레전드이자 거장" 최백호 왈 "동시대에 이런 대단한 기타리스트가 존재한다는건 그야말로 행운이다" 덧붙여 함춘호는 편곡자 (대표작으로 이윤수 2집 먼지가 되어 리메이크 버전을 편곡했고 이 버전은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훗날 가장 훌륭한 편곡 버전으로 회자된다. 시인과 촌장 2집의 전곡 및 다른 많은 음반의 편곡자이기도 하다.) 및 프로듀서, 음악감독으로서 활약하기도 하며 간혹 작곡을 하기도 했었다. 공연에서 가끔 노래를 하기도 한다. 2020년 기준으로, 서울신학대학교 실용음악과 교수로 재직중이며(학과장), 대중음악인 단체인 한국연주자협회 회장과 기독음악인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다. 학력발매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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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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