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함대 (일본)
제6함대(일본어: 第六艦隊 다이 로쿠 칸타이[*])는 태평양 전쟁 기간 중의 1940년 11월 15일부터 1945년 9월 2일까지 존재했었던 각지에 흩어져 있던 잠수함 부대를 통합해서 운용하기 위해 편성된 일본 제국 해군의 함대였다. 미국 서해양방면, 인도양 방면 오스트레일리아 동양방면에서의 정찰 및 점감 요격을 맡았다. 역사태평양 전쟁 시작 당시 하이와 방면의 정찰, 잠수정에 의한 진주만 돌입, 동태평양에서의 통상파괴, 오스트레일리아에서의 기뢰 매설에 종사하였다. 그러나 진주만 공격의 성공에 의해 주 목적인 점감 요격의 필요성이 떨어지고, 오스트레일리아 동해나 인도 양에서의 통상파괴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 시드니 및 디에고수아레즈로의 잠수정 돌입, 진주만 폭격을 집행한 2식 비행정에 해상보급활동 등, 잠수함 특성을 살린 특수 활동에도 종사하였다. 피낭섬을 거점으로 삼아 계속하고 있던 인도 해 방면의 통상파괴 활동에 독일 잠수부대도 참가하여 어느 정도의 성과를 올렸으나, 대본영은 그러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이전과 다를바없이 점감 요격 작전에 잠수함을 쓰는 방침을 고수하였다. 솔로몬 제도 공방에 관해 연합군 기지가 있는 에스피리투산토섬이나 누벨칼레도니로의 정찰 임무에 종사했으나, 엄중한 경계로 속속들이 격침되었다. 구축함에 의한 "쥐 수송"( 사이판 전투에 따른 지상전에 따라 섬에 남은 제독을 구출하러 갔다. 사이판에 남으려는 다카기 다케오 사령장관의 의지를 무시한 구출작전에 차출되었으나, 도달할때까지 격침되는 배가 속출했다. 사태를 알아차린 타카기 사령장관은 작전 중지를 바라며 다른 제독들과 함께 전사하였다. 마리아나 해전, 레이테만 전투에서 정찰부대로서 파견되었으나, 무선통신의 방수나 초계선의 간파로 최전선에서 요격부대로서의 임무를 마치지 못했다. 1944년 11월 8일, 인간어뢰 가이텐의 실전 투입이 시작되어 가이텐 모함으로서 잠수함을 운용하였다. 종전까지 28회나 출격하였다. 울리시 환초 폭격을 목표로 출격한 이400과 이401은 종전 조칙을 받고 되돌아가, 1945년 9월 2일 미국군의 감시 아래에 요코스카 항에 귀환하여 제6함대의 모든 활동을 마쳤다. 종전까지 공격을 했던 함정부대였다. 구조지휘부
전투 서열
1939년해군 소연습을 위한 임시 편성. 해군 사령공보(辞令公報) (부내한=대외비) 제352호에 따른다. 1940년 11월 15일참전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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