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항공함대(第一航空艦隊 다이 이치 고쿠단[*])는 일본 제국 해군의 항공모함 함대와 기지 항공 부대이다. 이 함대를 핵심으로 다른 함정을 맞춘 세계 최초의 항공모함 기동 부대로 운용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반에 기지항공부대로 재편성되어 육상 비행장을 거점으로 작전을 수행하는 기동항공부대로 운용되었다.
각 항공전대에 포함된 구식 구축함을 제외하고 항공모함으로만 편제했기 때문에 군대 구분에 따라 제1함대와 제2함대에서 임시 배속된 호위함정을 수반하게 되었고, 하나의 기동 부대로 제도화되지는 못했다. 이 때문에 나구모 주이치 장관은 마지막까지 부대로서의 생각 통일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구사카 류노스케 참모장은 한칼에 주도한 계획을 보내 즉시 실행하면, 다른 적을 두게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나구모 주이치 장관은 항공에 관해서는 정통하지 못했고, 구사카 참모장도 겐다 미노루 항공참모를 평가하는 계획만을 세우고 있었으며, 겐다 함대라고 칭하는 말까지 있었다. 겐다 참모는 기존 소속함에서 열린 항공대의 지휘와 훈련을 기종별로 나눈 공중 지휘로 변경했다. 또한 선제 기습을 위해 적을 마주하는 작전 중 은밀한 행동을 중시하면서, 항공모함을 집중 운용하고 공격대의 공중 집합도 쉽게 하여 전투기와 대공포도 집중시켰다.
1941년12월 8일 태평양 전쟁을 시작하는 하와이진주만 공격으로 미국의 전함 4척을 격침시키고, 2척을 대파시켜 미국 태평양 함대를 행동 불능으로 만드는 큰 전과를 올렸다. 직후 남하를 해서 뉴기니, 호주, 인도양을 돌아다니며 연합군의 주요 근거지를 전멸시키며 대항해를 했다. 라바울, 카비엔 공략을 지원하고, 다윈 공격, 자바해 소탕전 등에서 활약하면서 태평양의 제공권을 얻게 되었다.
1942년 4월 함대 편제 개정으로 예하 부대로 여러 전대(경순양함 나가라(長良)와 구축함 12척)가 신설되어 고유 편제의 호위 함정을 가지게 되었다. 그 후 좌초 사고를 일으킨 가가를 제외한 다섯 척의 항공모함을 중심으로 인도양으로 진출했다. 실론 해전에서 빼어난 명중률을 보인 급강하 폭격으로 항공모함 HMS 허미즈를 격침시킨 후 기타 다수를 격침시키고, 트링코말리 항구를 폭격하는 전과를 올렸다.
인도양 작전까지 안정적으로 총471기 격추하고 손실은 1/10 정도에 지나지 않았으며, 함정은 한 척의 피해도 없었다. 사상 유례없는 연속적인 승리를 기록한 제1항공 함대는 세계 최강의 기동 부대가 되었지만, 연전연승으로 인한 피로와 자만심이 드러났다.
인도양에서 귀환한 기동 부대는 쉴새 없이 미드웨이 작전을 명령받았다. 준비기간도 없었고, 대규모 인사이동에, 제5항공전대쇼카쿠, 즈이카쿠도 제외되어 4척의 항공모함으로 작전에 참가했다. 1942년 6월 미드웨이 작전에서 동시에 실시된 알류샨 작전에 참여하여 제4항공전대준요, 류조의 기간병 부대를 부대 구분에 따라 제2기동부대로 했기 때문에 기존의 제1항공함대 기간병이 운용하는 기동 부대는 제1기동부대로 미드웨이 작전에 참가했다. 그러나 미드웨이 작전은 항공모함 4척을 잃고 실패로 끝났고, 해전 후 제1항공함대는 해체되었다.
기지기동부대
1941년7월 1일, 경제적 이유로 인력과 장비 부족을 겪으며 재건에 난항을 겪고 있던 제1항공함대가 발족했다. 항공모함을 건조할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었고, 모함기에 탑승할 조정사 교육 훈련이 어려웠으며, 항공모함의 취약점 등으로 인해 남서태평양에 흩어져있는 기지를 침몰하지 않는 항공모함으로 활용한다는 군사령부 참모 겐다 미노루 중령의 구상 아래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