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일제강점기 경기도 시흥군 남면 산본리에서 성재(省齋) 이규응(李奎應, 1882. 9. 1.~1948. 8. 15.)과 남원 양씨(南原 梁氏) 양남옥(梁南玉, 1886. 7. 10.~1962. 11. 4.) 사이에서 5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2]
인성군(仁城君, 1588. 12. 17. ~ 1628. 6. 21.)의 종손(宗孫)으로 현조부는 조선의 왕자로서 노비 약 1만개(지금 수십만명)를 소유했다. 대대로 왕족이었으며, 친조부도 관직을 지낸 정치인으로 정치 가문의 귀족적 가풍을 이어받았다.
학위 취득
전국민이 무학이던 시절에 경성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명문대 주오 대학에서 법학 학사 학위를 수여했다.[3]
재계 활동
귀국하여 곧 일본의 조선 농민의 경제적 약탈기관이었던 금융조합 이사와 금융조합연합회 사업부장·고문 등을 지냈다.
정계 활동
1948년 제헌 국회의원,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1952년 제5대 상공부장관을 지냈으며, 이범석계 족청파(族靑派)로 활동하였으며,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1968년 신민당 부총재,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1983년 민주정의당 초대 대표위원을 지냈다.[4]
외부적으로는 한일친선협회 회장 직위를 지냈으며, 일본황실로부터 훈일등극일수교훈장을 서훈, 정부 내각으로부터 수교훈장 광화대장을 서훈했다.[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