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매치라는 더비 명칭의 유래에는 두가지 설이 있다. 첫번째는 2008년 스포탈코리아에 재직 중이었던 서호정 기자가 기사에 슈퍼매치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고 이 후 스포탈코리아 축구팀의 기사에 슈퍼매치가 사용되면서 널리 퍼졌다는 것이다. 참고로 보도자료 성격이 아닌 언론 기사에서 슈퍼매치가 사용된 것은 2008년 스포털코리아의 축구 기사인 것은 검색으로 확인되고 있다.[3][4][5]두번째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홍보팀 직원이 2008년인가 2009년인지는 불확실하지만 이 시기 홈 경기를 앞두고 보도자료를 만드는 과정에서 수원-서울 대결 앞에 붙일 수식어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슈퍼 클라시코’ 등이 여러 후보를 떠올리면서 아이디어를 모으던 중 ‘슈퍼매치’란 단어가 떠올라 FC 서울 측에 얘기했더니 괜찮다는 반응을 보여 처음 사용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6] 이에 대해 FC 서울은 수원 삼성
홍보팀의 공식적인 명칭 제안은 없었고 언론을 통해 슈퍼매치 명칭이 어느정도 자리잡은 후에 양 구단이 공식적으로 사용했다는 입장이다.
결론적으로 작명 유래는 불분명하지만 슈퍼매치라는 명칭이 세상에 나온 후 양 구단, 언론, 축구팬들이 이를 자연스럽게 부르기 시작하고 한국프로축구연맹 주도하에 서울과 수원의 더비를 슈퍼매치라는 이름으로 브랜딩하면서 완전히 고착화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7]
역사
슈퍼매치의 시작은 FC 서울의 안양 LG 치타스 시절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라이벌 매치에서 시작이 되었으며 두 구단의 라이벌 관계가 격화된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96년 창단 첫 해 K리그 준우승을 이끈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김호 감독과 조광래 코치가 극심한 불화를 겪은 뒤 1997년 결별하였고, 1999년 조광래가 안양 LG 치타스의 감독을 맡으며 양 팀의 감독의 껄끄러운 관계에서 나오는 신경전으로 인하여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안양 LG 치타스 간의 라이벌 관계가 형성되었다.[8]
이후, 1997년까지 안양 LG의 선수였던 서정원이 프랑스 프로축구 리그 1의 RC 스트라스부르를 거쳐 1999년 K리그로 복귀하면서 당초 복귀를 약속하였던 자신의 친정팀인 안양 LG가 아닌 돌연 수원 삼성행으로 이적하였고,[9] 안양 LG는 당시 약속이행을 조건으로 지급했던 이적료의 절반을 반환하라는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서정원이 이면계약을 이유로 이것을 거부하면서 법정공방까지 벌여 양 팀의 감정 대립이 심화되었다. 이후, 2004년 대법원의 최종 판결에 따라 서정원이 FC 서울에 3억원을 보상하는 것으로 마무리지어졌다.[10]
게다가 양 팀의 모기업인 삼성과 LG가 재계 라이벌이라는 이유 또한 양 팀의 경쟁이 더욱 가열되는 원인이 되었다.[11]
그리고 1999년 3월 20일 열린 슈퍼컵에서 안양 LG의 팬들은 서정원의 '유니폼 화형식' 퍼포먼스를 전개하였고, 이 경기에서 서정원은 친정팀의 수비진영을 마음대로 휘저으며 2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해트트릭을 터뜨린 샤샤와 함께 수원 삼성의 5-1 대승을 이끌었다.[12] 하지만 이후 안양 LG는 선수들에게 특별수당을 지급하면서까지 승부욕을 자극시키고 조광래 감독이 수원 삼성에서 만들었던 훈련 프로그램을 똑같이 안양 LG에 적용시키면서 기존까지 열세에 있던 상대전적을 우세로 이끌며 2000년 K리그 우승을 차지하였고, 이후 양팀의 격차가 눈에 띄게 좁혀져 치고받는 접전이 반복되었다.[13][14] 이후 2003년 일본J리그교토 퍼플 상가에 임대되었던 고종수가 2004년 원 소속구단인 수원 합류를 거부하고 안양 LG로 이적을 추진하여 다시 한 번 감정싸움을 하기도 하였다.[15][16]
양 팀 서포터즈 또한 서로 상대방을 '치토스'(안양 LG의 구단명인 치타스를 비하하는 용어)와 '닭날개'(수원 삼성의 구단명인 블루윙즈를 비하하는 용어)로 비하하며 불붙은 라이벌 의식에 기름을 부었는데, 2003년 양 팀은 이러한 별명에 관련된 대형 걸개를 만들어 서로 격한 신경전을 벌이기도 하였고 수원 삼성 서포터가 경기장 내 플래카드에 불을 지른 방화 범죄 사건과 수원 삼성에서 뛰던 안정환이 관중석으로 뛰어올라 FC서울 팬과 충돌한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17]
2009년 FIFA 홈페이지에서 세계 축구 더비를 소개하는 메뉴에서 7번째로 슈퍼매치가 소개 되었는데 이를 두고 세계 7대 더비라고 와전되었고 한국프로축구연맹과 해당 구단인 FC 서울, 수원 삼성 블루윙즈 양 구단에서 홍보차원으로 무분별하게 사용하면서 확산되었다. FIFA에서 공식으로 세계 7대 더비를 발표한 적이 없으며 당시 7번째로 소개되었던 슈퍼매치는 2012년도에는 41번째로 순서가 변경되었고 당시 첫번째로 소개되었던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의 엘 클라시코는 81번째로 순서가 변경되었다.[18] 대략 2014년까지 한국프로축구연맹과 양 구단이 보도자료 등을 통해 세계 7대 더비라고 소개하였으며 이를 방송과 신문 등 언론에서 여과없이 그대로 보도하면서 잘못된 사실이 계속 전파되었다. 이 여파로 대략 2016년까지 언론사들을 통해 세계 7대 더비라는 수식어가 붙은 기사들이 작성되었으나 2017년부터는 거의 사라졌다.
양 구단에서 활약하였던 선수
서울과 수원 양 구단 간 최초 직접이적 선수: 당시 신생구단인 수원의 선수 지원을 위해 이적한 김동해 (1995년 12월)[19]
서울 소속으로 계약기간이 남은 상태에서 이적료를 동반한 직거래를 통해 수원으로 이적한 선수: 백지훈 (2006년 7월), 이종민 (2013년 1월)
수원 소속으로 계약기간이 남은 상태에서 이적료를 동반한 직거래를 통해 서울로 이적한 선수: 이상호 (2016년 12월)
서울 소속에서 (타구단 임대 포함) 계약만료 및 해지가 되어 자유계약에 의하여 곧바로 수원으로 이적한 선수: 박성배 (2007년 1월), 데얀 (2018년 1월)
수원 소속에서 (타구단 임대 포함) 계약만료 및 해지가 되어 자유계약에 의하여 곧바로 서울로 이적한 선수: 박정석 (2001년 1월)
서울로 임대되었다가 원소속구단으로 복귀 후 계약만료 및 해지가 되어 자유계약에 의하여 곧바로 수원으로 이적한 선수: 뚜따 (2003년 1월)
수원으로 임대되었다가 원소속구단으로 복귀 후 계약만료 및 해지가 되어 자유계약에 의하여 곧바로 서울로 이적한 선수: 조찬호 (2016년 1월)
※ 데얀은 개인 최다골(9골)을 기록한 선수이다.
※ 윤주태는 한 경기 최다골(4골)을 기록한 선수이다. 박주영의 기록(헤트트릭)을 넘는 기록이다.
※ 안델손은 슈퍼매치에서 전반 2분 가장 빠른 골을 기록한 선수이다.
※ 서정원은 FC 서울 소속으로 3골, 수원 삼성 소속으로 3골 총 6골을 기록하였다.
※ 이상호는 수원 삼성 소속으로 4골, FC 서울 소속으로 1골 총 5골을 기록하였다.
※ 데얀은 FC 서울 소속으로 7골, 수원 삼성 소속으로 2골을 넣어 현재 9골을 기록 중이다.
※ 김진규, 김주영, 곽광선, 조성진은 슈퍼매치에서 자책골을 넣은 선수이다.
※ K리그 최고의 흥행카드인 서울과 수원의 라이벌전은 언제나 수많은 관중들이 경기장을 찾았다.
양팀 경기 평균 관중은 23,202명으로 2011 시즌K리그 평균 관중 10,126명의 2.3배에 달한다.
※ 역대 K리그 한 경기 최다 관중 기록에서도 양팀간의 경기가 최다 관중 Top 10중에 5번이나 들어 있다.
※ 2011년 3월 6일에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경기는 K리그 개막전 사상 최다 관중 기록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