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성군
귀성군 또는 구성군(龜城君)으로 책봉된 이준(李浚, 1441년 1월 20일~1479년 1월 28일)은 조선 전기의 왕족이다. 본관은 전주이고, 자(字)는 자청(子淸)이자, 호(號)는 자준(子濬)이며, 시호(諡號)는 충무(忠懋, 忠武)로 추시되었다. 이력그는 조선 세종대왕의 4남으로 출생한 임영대군의 2남(둘째아들)이다. 어렸을 때는 할아버지 세종에게, 자라서부터는 큰아버지 세조에게 총애를 받아 20대의 나이에 의정부 영의정을 지냈다. 생애그는 1441년 1월 20일, 조선 한성부에서 세종대왕의 넷째 아들인 임영대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1466년에는 등준시무과에 갑과 급제함에 이어 도총관이 되어서 이듬해 1467년 남이와 함께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는 총사령관에 임명되고 난을 진압한 공로로 27세의 나이로 병조판서에 제수되었으며, 그 해 남이에게 그 직을 넘기고 1468년 음력 7월 17일에 28세의 나이로 영의정에 임명되었다.[2]정치적으로는 훈구파에 가까웠지만, 신진세력 및 사림파와도 가깝게 지냈다. 1468년 9월 큰아버지 세조가 선위하고 사촌 동생이자 손윗동서인 예종이 즉위하자 영의정으로써 잠시 섭정하다가 1469년 1월 아버지 임영대군이 훙서(薨逝)하자 아버지상을 치르기 직전에 영의정 직위에서 물러났다. 1470년 최세호가 귀성군이 왕의 재목이라고 한 것을 정인지(鄭麟趾)가 역모로 엮어서, 1월 14일에 최세호와 권맹희는 죽임을 당하고, 귀성군은 유배를 가게 된다. 그로부터 9년 후 1479년 1월 28일에 39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사후한동안 복관되지 못하다가 숙종 때의 영의정 김수항(金壽恒) 등의 대신들에 의해 복관 조치 처분되었으며, 훗날 고종 때 종친들의 건의로 1872년(고종 9) 12월 4일 귀성군(龜城君) 이준(李浚)의 대를 무안대군(撫安大君) 이방번(李芳蕃)의 현손인 회원군(會原君) 이쟁(李崢)을 양자로 삼아 잇게 하였다[3]. 또한 고종에 의해 충무(忠武)의 시호를 받았다. 가족 관계
관련 작품드라마
각주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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