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호상은 초대 문교부장관이 되어 홍익인간의 이념을 근간으로 하는 교육이념을 토대로 한국교육의 방향을 설정했으며 국민교육헌장의 사상을 구축하는 데 박종홍과 함께 참여하였다. 학술원 회원과 참의원, 한독(韓獨) 협회 회장, 국제문화총재단 이사장, 민족학회 총재, 배달문화원 총재, 대륙문화연구회 총재 등을 지냈다. 1992년에는 대종교의 최고지도자인 총전교에 올랐다.
1922년중국으로 건너감, 상하이에 있는 중덕학교(中德學校, 현재 국립 퉁지대학) 예과에 입학(10월)하여 1924년 7월 예과를 졸업하였다. 이어서 안호상은 독일에서 유학하였다. 1925년 5월부터 독일의 예나 대학교에서 철학과 법학을 공부하였는데, 그는 바우흐(B. Bauch), 그리스바흐(Griesbach), 콜로이터(O. Koellreuter), 휘브너(Hübner), 헤데만(J. Hedemann) 교수 등의 강의를 들었고, 헤겔 학도였다.[2]1929년독일 예나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3]
안호상은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의 변증법에 토대한 방법을 이용해 유물론과 유심론을 종합하여 분석하고 비판하려고 시도했다.[16] "물질이 없이는 정신은 물질을 생산할 수 없고 정신 없이 물질은 정신을 생각할 수 없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16] 안호상은 혈통에 근거한 민족주의를 내세웠고 그 근본에는 단군 신앙이 있었다. 다시 말하면 단군 신앙을 중심으로 하는 일민주의를 강조했다. 개인의 자유보다 국가 이익을 우선한 안호상은 문교부 초대 장관으로서 민족종교에 근거한 민족국가를 형성하려 했다.[17]
↑최종고, 《韓獨交涉史》 홍성사 (1983) 204쪽, “안호상(1903.1.23생)은 1922년 동경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22년 10월, 상해 중덕학교(中德學校)에 입학하여 1924년 7월에 졸업하였다. 1925년 5월부터 독일의 예나 대학에서 철학과 법학을 공부하였는데, 그는 바우흐(B. Bauch), 그리스바흐(Griesbach), 콜로이터(O. Koellreuter), 휘브너(Hübner), 헤데만(J. Hedemann) 교수 등의 강의를 들었다. 1929년에 동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학술원 회원>작고 회원>안호상>학력”. 대한민국 학술원. 2016년 3월 6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2년 11월 18일에 확인함. 1929 ~ 1930 영국 옥스포드대학|인용문=에 수평 탭 문자가 있음(위치 13) (도움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