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용 정씨 (광해군)
조선의 제5대 왕 문종의 후궁 소용 정씨에 대해서는 소용 정씨 (문종)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소용 정씨(昭容 鄭氏, 1596년[1] ~ 1623년 음력 3월 13일)는 조선의 제15대 왕 광해군의 후궁이다. 정사룡의 서증손녀이고, 정광필의 종고손녀가 된다. 생애언제 태어났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조선 중기의 문신 정사룡의 서증손녀이자 정상헌의 딸로, 출신은 천인이다[2][3][4]. 성은 정, 본관은 동래이다[5]. 조선 제15대 왕 광해군의 후궁으로, 품계는 정3품 소용에 이르렀다. 정씨가 언제 입궁하여 후궁이 되었는지는 기록이 없다. 다만 《조선왕조실록》 1613년(광해군 5년) 음력 12월 30일 기사에서 그녀를 "소용 정씨"로 언급하고 있으며, 더불어 광해군이 마지막까지 함께 한 후궁 5명 중 1명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특히 정씨는 교태를 잘 부리고, 왕에게 출입하는 행정 문서를 잘 관리하고 처리하여 광해군이 총애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정씨는 외모가 뛰어났던 소용 임씨, 머리가 비상했던 상궁 김개시와 함께 왕의 총애가 "후궁 중에 으뜸"이었다고도 기록되어 있다[6]. 한편 정씨는 원래 종4품 숙원이었다가 훗날 소용으로 진봉되었다[7]. 그러나 1623년(인조 원년) 음력 3월 13일 인조 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자[8], 정씨는 그날 바로 자결하여 생을 마감했다[9]. 광해군과의 사이에서 자녀는 없었다. 가족 관계정씨에게는 오빠가 1명 있었는데, 이름은 정지산이다. 그러나 다른 기록에는 정씨의 남동생이라고도 한다[10]. 정지산은 정사룡의 증손자이나, 출신은 서자인데다가 천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궁으로 책봉된 정씨 덕에 특별히 관직을 받아 빙고별좌가 되고, 1617년(광해군 9년) 음력 9월 2일에는 광해군의 친형 임해군의 기생 환어사(喚御史)를 체포하는 공을 세웠다[2][3][7]. 그러나 정지산은 이 해 음력 10월 21일에 사망하였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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