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은 1963년8월 23일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건축과 교수였던 아버지를 따라 어릴 적에 전시회를 많이 다녔고, 미술에 관심이 많아 미술사학자를 꿈꾸던 학생이었다.[3] 박찬욱의 동생은 설치미술가, 사진작가 겸 미술평론가인 박찬경이다.
건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 영동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미술사학자의 꿈을 가지고 서강대학교철학과로 진학했다. 그러나 대학 재학 중 도서관에서 영화 원서를 많이 읽게 되었고, 영화 동아리를 만드는 데 참여하고 영화를 많이 보게 되면서 영화 감독이 되기로 결심했다. 어느 날 한 교수가 작은 영화 상영회를 하던 중 앨프리드 히치콕의 《현기증》을 보여주었고, 이것을 계기로 히치콕의 영화에 매료되었다.[3] 이후에는 비교적 덜 유명한 영화를 찾아다니게 되었고, 아벨 페라라, 핼 하틀리,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들의 작품이 좋아지게 되면서 히치콕의 영화는 너무 완벽성을 추구하는 영화로 느껴졌고 이후에는 완벽과는 거리가 먼, 기술이나 시나리오도 없이 찍은 것 같은 거친 느낌의 영화에 더 매료되었다. 이후 다양한 영화를 접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에 빠졌다.[4]
1983년 영화 평론가로 첫 등단하여 이후 9년간 영화평론가로 활동했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에는 이무영 감독과 함께 ‘박리다매’란 이름의 공동 각본가로도 활동했다. 영화사 모호필름(Moho Film)의 설립자이자 대표다.[5][6]
대학을 졸업한 후 이장호 감독의 제작사였던 '판 영화사'에 연출부의 일원으로 들어갔다. 연출부에서 곽재용을 만났고 그 인연으로 곽재용의 감독 데뷔작 《비오는 날의 수채화》의 조감독을 맡았다. 그러나 독립영화처럼 찍던 《비오는 날의 수채화》 현장의 어려움으로 조감독을 그만 두었고 영화인의 길을 포기할 생각도 했으나 당시 구상중이던 각본만 완성하기로 한다. 그러나 각본을 완성한 후 다시 영화에 대한 재능과 열정을 느껴 영화의 길에 들어서기로 한다.[3]
이후 작은 영화사에 들어간 박찬욱은 1992년 그의 첫 영화인 《달은... 해가 꾸는 꿈》으로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러나 당시 한국 영화계에는 낯설었던 B급 영화 정서에 기반한 이 작품은 영화팬들에게는 화제가 되었지만 상업적으로는 실패했다.
자신이 감독한 첫 번째 영화 이후 박찬욱은 당시 넉넉치 않은 형편으로 인해 영화 평론가로 활동하면서 1997년에 두 번째 작품 《삼인조》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거칠고 난폭한 줄거리로 구상했으나 중간에 제작사가 바뀌고 시간을 끌게 되면서 그가 처음 의도했던 것과는 달라지면서 흥행과 비평 면에서 모두 실패했다.[3]
《삼인조》의 실패로 어려움에 처한 그는,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가지고 제작자를 설득하다가 당시 명필름심재명 대표를 만나게 되었다. 심재명 대표로부터 남북 분단을 소재로 한 박상연의 소설 'DMZ'를 영화화 한 《공동경비구역 JSA》의 감독을 제안받게 되고 소재나 미스터리 느낌의 줄거리에 끌려 그는 《공동경비구역 JSA》(2000년)의 감독을 맡았다.[3] 이 영화는 감독의 의도와 유머가 살아 있으면서 사회적 의미도 담고 있어 관객의 호응을 받았으며 583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그 해 최고 흥행작이 되었다.[7] 이 영화로 2000년 제21회 청룡영화상 감독상, 2001년 제37회 백상예술대상 영화감독상, 도빌 아시아영화제 작품상, 제38회 대종상 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2002년 그가 감독한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은 제3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하였고,[8] 이탈리아 필름느와르 페스티벌 심사위원 특별상, 2003년 우디네극동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하였다.[9]
2003년 박찬욱은 최민식을 주연으로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올드보이》를 만들었고, 이 영화는 관객수 326만을 기록했다.[10] 이 작품으로 2004년칸 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11]
2005년 박찬욱은 영화 《친절한 금자씨》를 발표했다. 《복수는 나의 것》(2002), 《올드보이》(2003), 《친절한 금자씨》로 이어지는 세 편의 영화는 복수를 주제로 하여 일명 '복수 삼부작'으로 불리기도 한다.[12] 이 세 작품은 공식 시리즈는 아니며, 처음부터 삼부작으로 기획된 것도 아니었으나 연달아 두 번의 복수극을 만들게 된 박찬욱 감독이 다음 작품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즉흥적으로 '복수 3부작'에 관해 생각해냈고 《친절한 금자씨》를 만들었다.[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