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밴드)
백두산은 대한민국의 3대 헤비메탈 밴드이다. 활동결성1970년대 후반부터 미8군 부대를 중심으로 솔로 활동 및 '라스트 찬스', '사계절', '사랑과 평화'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던 유현상과 베이시스트 김창식, 드러머 한춘근 등에 의해 1983년에 결성되었으나 당시 '솔로몬'이란 밴드의 멤버였던 이태원의 천재적인 속주 기타리스트 김도균이 서라벌 레코드사 사장의 권유로 1985년 말 밴드에 가입하게 되면서 제대로 된 밴드로서의 라인업을 갖추게 된다. 전성기1986년 6월 백두산의 데뷔 앨범 《Too Fast! Too Loud! Too Heavy!》가 발매된다. '어둠 속에서', '말할걸', '뛰어', '웅비' 등의 곡들은 향후 백두산이 음악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바를 잘 보여준 곡들이었다. 베이시스트가 김주현으로 바뀐 뒤, 보컬 유현상이 샤우팅 창법으로 선회하여 이듬해에 발매한 2집 《King Of Rock'N Roll》은 헤비메탈 밴드로서 완벽하게 변모한 백두산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최고의 걸작이라고 평가 받고 있으며 국내 헤비메탈 역사상 최고로 손꼽히는 메탈명반으로 인정되고 있다. 일본의 'BURRN!'이라는 외국 잡지에 소개된 적도 있었으며 백두산이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Main Character (주연배우)'를 제외한 모든 곡의 가사들이 영어로 되어있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나 당시 영어 가사에 대한 탄압이 너무 심해 정작 방송출연을 할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대중들로부터 인기가 엄청나 백두산은 무려 500회가 넘는 순회공연을 가졌다. 해체와 침체기2집 발매 직후 1987년, 부활의 김태원이 대마초로 구속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이를 계기로 대한민국 락씬이 초토화되는 불운을 겪게 된다. 대다수 락계 인사들이 무차별 체포되자, 해외에서는 인정을 받는데도 정작 국내에서는 음악의 가사, 무대 퍼포먼스에 대한 심의가 너무 심해 자신들의 곡이 방송 불가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정신적으로 이기지 못하고 하나 둘씩 해체되는데 백두산 역시 국내의 열악한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해체하기에 이른다. 김도균은 이러한 환경을 정신적으로 이기지 못해 탈퇴, 영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고, 유현상은 백두산을 해체, 백두산 프로덕션을 설립, 가수 이지연을 데뷔시켜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만 갑작스런 이지연의 결혼으로 유현상은 회사마저 문을 닫게 되고, 최윤희와 결혼 후에 트로트 가수로서 활동하게 된다. 김도균은 실력을 갈고 닦기 위해 《Rock In Korea》에 참여, 1989년에 임재범과 함께 영국으로 떠난 뒤 슈퍼밴드 '아시아나'를 결성했지만 이는 오래 가지 못했고, 1993년 베이시스트 '김창식', 드러머 '최경섭'과 함께 다시 백두산을 재결성한다. 3집 《너를 기다리네》를 발매, 김도균이 직접 리드 보컬까지 함께 맡은 이 앨범은 이전의 백두산의 앨범들과 달리 하드락 성향을 띈 앨범이었으며 '너를 기다리네'와 같은 발라드 곡이 인기를 끌었으나 대마초 사건에 다시 연루되면서 불명예스러운 해체를 맞이한다. 재결성2008년에는 원년 멤버로 재결성해[1] 동두천 락 페스티발에서 재결합 공연을 가졌으며,[2] 2009년에는 4번째 정규 음반 《Return Of The King》을 발표했다. 2011년 5번째 정규 음반 《Rush To The World》가 발매되었다. 2집처럼 두 곡을 제외한 모든 곡들의 가사가 영어로만 작사되었다. 재결성 후에 드러머가 '미르', '사혼', '피어 잇 소울'에서 활동하던 박찬으로 바뀌었다. 또한 베이시스트도 지병인 천식으로 탈퇴한 기존의 멤버 김창식 대신 김경호 밴드와 에메랄드 캐슬, N.EX.T 등을 거친 경호진을 새롭게 영입했다. 김도균과 함께 3집을 같이 작업했을 때 연이 닿아서 함께 합류한 것으로 보이지만 경호진은 탈퇴하였고 김창식이 새롭게 복귀하였다. 에피소드
음반 목록
방송 출연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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