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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양동 (서울)

가양제1동
加陽第1洞
가양제1동주민센터
가양제1동주민센터

로마자 표기Gayang 1(il)-dong
행정
국가대한민국
지역서울특별시 강서구
행정 구역24, 201
법정동가양동, 마곡동, 등촌동
관청 소재지서울특별시 강서구 허준로 30
지리
면적4.70 km2
인문
인구34,099명(2022년 2월)
세대11,916세대
인구 밀도7,260명/km2
지역 부호
웹사이트강서구 가양1동 주민센터
가양제2동
加陽第2洞
가양제2동주민센터
가양제2동주민센터
로마자 표기Gayang 2(i)-dong
행정
국가대한민국
지역서울특별시 강서구
행정 구역26, 194
법정동가양동
관청 소재지서울특별시 강서구 허준로 93
지리
면적1.00 km2
인문
인구13,971명(2022년 2월)
세대7,899세대
인구 밀도14,000명/km2
지역 부호
웹사이트가양2동 주민센터
가양제3동
加陽第3洞
가양제3동주민센터
가양제3동주민센터
로마자 표기Gayang 3(sam)-dong
행정
국가대한민국
지역서울특별시 강서구
행정 구역24, 189
법정동가양동
관청 소재지서울특별시 강서구 허준로 202
지리
면적0.99 km2
인문
인구14,946명(2022년 2월)
세대7,743세대
인구 밀도15,000명/km2
지역 부호
웹사이트가양3동 주민센터

가양동(加陽洞)은 서울특별시 강서구에 있는 동이다.

개요

가양동의 동명은 ‘가마동’(加麻洞)과 ‘고양리’(古陽里)가 합쳐지면서 가마동의 ‘가’자와 고양리의 ‘양’자를 따서 비롯되었다. 한강 서부지역은 백제의 시조 온조왕의 형 비류가 나라를 세웠다는 미추홀에 해당 되니 삼국사기 (권37 잡기 제6 지리) 백제 한산주편에 잉벌로현(仍伐奴縣:시흥), 제차파의현(濟次巴衣縣:강서구), 매소홀현(買召忽縣:인천)등은 모두 ‘미추홀’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강서구는 비류백제의 미추홀에서부터 역사가 시작된다고 볼 수 있으며 최초의 지명이 ‘제차파의’라는 것을 알 수 있다.[1]

1914년 3월 1일 경기도 양천군 군내면 향교동(鄕校洞), 고양리(高陽里), 가마동(加麻洞), 성재정리(城才井里), 공암리(孔岩里)가 합하여 김포군 양동면 가양리가 되었다.[2] 1963년 1월 1일에는 서울시로 편입되어 영등포구 가양동 (양동출장소관할)으로 편입되었다. 현재처럼 강서구 소속이 된 것은 1977년 9월 1일 영등포구가 분구되어 강서구가 신설되면서부터이다. 1993년 4월 1일에는 가양동이 가양1,2,3동으로 분동되었다.[3]

교육

아파트

  • 서울주택도시공사
    • 가양2단지 - 1992년 11월 입주 / 성지건설
    • 가양3단지 - 1992년 12월 입주 / 신일건업
    • 가양4단지 - 1992년 12월 입주 /
    • 가양5단지 - 1992년 11월 입주 / (주)건영, 대주건설
    • 가양6단지 - 1992년 11월 입주 / 남광토건
    • 가양7단지 - 1992년 7월 입주 / 신화건설
    • 가양8단지 - 1992년 11월 입주 / 삼성중공업
    • 가양9-1단지 - 1992년 11월 입주 / 일성건설
    • 가양9-2단지 - 1993년 2월 입주 /

교통

같이 보기

각주

  1. 가양동 유래 및 연혁 Archived 2013년 12월 31일 - 웨이백 머신, 2012년 6월 15일 확인
  2. 조선총독부령 제111호
  3. 강서구 조례 제224호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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