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양동 (서울)
개요가양동의 동명은 ‘가마동’(加麻洞)과 ‘고양리’(古陽里)가 합쳐지면서 가마동의 ‘가’자와 고양리의 ‘양’자를 따서 비롯되었다. 한강 서부지역은 백제의 시조 온조왕의 형 비류가 나라를 세웠다는 미추홀에 해당 되니 삼국사기 (권37 잡기 제6 지리) 백제 한산주편에 잉벌로현(仍伐奴縣:시흥), 제차파의현(濟次巴衣縣:강서구), 매소홀현(買召忽縣:인천)등은 모두 ‘미추홀’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강서구는 비류백제의 미추홀에서부터 역사가 시작된다고 볼 수 있으며 최초의 지명이 ‘제차파의’라는 것을 알 수 있다.[1] 1914년 3월 1일 경기도 양천군 군내면 향교동(鄕校洞), 고양리(高陽里), 가마동(加麻洞), 성재정리(城才井里), 공암리(孔岩里)가 합하여 김포군 양동면 가양리가 되었다.[2] 1963년 1월 1일에는 서울시로 편입되어 영등포구 가양동 (양동출장소관할)으로 편입되었다. 현재처럼 강서구 소속이 된 것은 1977년 9월 1일 영등포구가 분구되어 강서구가 신설되면서부터이다. 1993년 4월 1일에는 가양동이 가양1,2,3동으로 분동되었다.[3] 교육
아파트
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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